아인쉬타인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세상을 사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란 아예 없다고 믿고 사는 방법,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고 사는 방법, 그런데 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 믿고 사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가 신자인지 모르겠으나 신자란 모름지기 일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열고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한 구도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원한다고 부탁합니다. 스승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네가 기적을 원한다면 당장 가서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마당을 쓸라” 선문답 같아 보이지만 스승의 뜻은 분명합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들어 있는 신비를 찾아보라는 뜻입니다.
신앙의 눈을 뜨고 세상을 다시 보면 세상은 온통 기적으로 둘러싸인 정원과도 같습니다. 꽃이 피고 지는 일, 하늘에 달이 떠 있고 별이 반짝이는 일조차도 기적입니다. 밤에 잠자리에 눕고 아침이 되어 다시 눈 떠는 일도 저에게는 기적 같습니다. 나이 들어 안타까운 일은 일상 속에 깃든 신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은 마치 작은 우주 같았습니다.
온통 신기한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는 보물섬이었습니다. 매일 무언가를 발견하고 감탄하며 살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일상이 무덤덤해졌습니다. 어제 일이 반복되는 것 같고, 엊그제 일이 되돌려지는 것 같습니다.
나이든 남자들이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린 여자들은 감탄할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조금 색다른 장소에 가면 어린 여자는 감탄합니다. “우와~ 처음 봤어요. 세상에 이런 곳도 있나요?” 그런데 나이 든 여자는 아무리 멋진 곳을 보여줘도 감탄이 없습니다. 웬만한 데 가보고 웬만한 것은 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낯설게 보기’라는 기법을 사용하면 행복을 금방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내 주변과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자는 주님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능력이란 일상을 낯설게 보는 능력입니다. 매일 보는 사람, 하늘, 구름, 꽃, 나무를 보면서도 ‘우와!’ 하고 감탄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은 영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초월이 들어와 있습니다. CS 루이스는 ‘나니아연대기’ <사장 옷장 마녀>에서, 옷장속에 들어가면 신비한 나니아 왕국으로 연결된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일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에게 하나님 나라가 어디 있는지를 묻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고 대답했습니다. “너희 안”은 “우리 마음 안”이 아니라 “우리들 사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일상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영성입니다.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를 보면서 감탄할 수 있어야 생기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눈부시게 푸른 가을 하늘을 보고 하나님의 얼굴을 떠올려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