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하나님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답답하고 낙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요즘 저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래도 기도해보면 믿고 기다리라는 마음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란 자동차에 기어를 넣는 것과 비슷합니다.
자동차는 기어를 넣기 전에 즉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기어를 넣은 다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영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생활에서 기어를 넣는 것은 믿음의 반응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마음과 몸을 '전진'으로 셋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고 답답할 때는 영적 기어를 후진으로 놓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확 놓아 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어두울 때도 기어를 중립에 두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몰라도,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시는지 몰라도 어둠 속에서 기다려보겠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립기어에 두는 것입니다.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나갔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금 이 방안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밝을 때 이미 다 보았기 때문입니다.
밝을 때 본 것을 어두울 때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기어를 중립에 두고 불이 다시 켜질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것이 어두울 때 주님을 향한 최선의 신뢰라고 믿습니다.
지금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겠지요. 또 언젠가 불이 들어오겠지요.
그 때까지 켄가이어의 ‘새벽을 구하는 기도’로 묵상기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는 법과 밤을 지새우는 법과 새벽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 되는 뜻이다.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이 말을 인해 감사합니다.
기도하오니
그렇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면서
우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어둠 속에 벌벌 떨면서도
밤을 지새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밤을 지나본 적이 없는 사람이
던지는 낙관론이 없어도
새벽을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