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와 교회의 비리 (최영기 목사의 글입니다)
작년 말과 신년 초에 대형 교회 목회자 비리와 교회 분란에 관한 보도가 지상파 방송과 인터넷 신문을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타 종교에 관해서는 관대하면서 기독교 비리만은 악착스러울 정도로 파헤치는가,
섭섭한 생각이 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기대감이 있어서 그렇다고 위안을 삼습니다.
“교회와 목사가 이럴 수가 있느냐?” 비난한다는 것이 아직도 교회와 목사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비리가 밝혀졌을 때 교인들은 두 종류로 갈라지는 것 같습니다.
목회자의 비리를 변호하고 정당화시키려는 교인들과, 목회자를 공격하고 매도하는 교인들입니다.
제 생각에는 둘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가 잘못과 죄를 정당화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우기고, 죄를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성령님을 거역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마태 12:31).
그러나 교회 문제의 핵심에 있는 목회자들을 싸잡아서 비열한 인간,
악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열하고 악한 목회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날 미디어에서 공격받는 목회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목회자들의 ‘비리’와 ‘부정’은 인격이 비열해서가 아니라 정직성, 정확성, 투명성이 결여 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말씀으로 세상 문화를 바꾸지 못하고 거꾸로 세상 문화에 물든 결과입니다.
미국에서는 “당신 거짓말쟁이다 (You are a liar!)”라는 말이 가장 모욕적인 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결투하자고 권총을 빼들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문화에서는 선의의 거짓말은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말기 위암 환자에게 위궤양이라고 말하는 것이 한 예입니다.).
그러다 보니 목회자에게서 정직성이 사라졌습니다.
서양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정확합니다.
직장 동료끼리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도 자기가 선택한 음식 값을 각자가 지불합니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두루 뭉실 넘어가는 것이 미덕이고, 정확성을 요구하면 인간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에서 정확성이 희생되었습니다.
동양의 가부장적인 정서 때문에 교회 안에서 담임 목사는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담임 목사가 원하는 것을
‘은혜롭게’ 처리하는 것을 덕목으로 압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 투명성이 상실되었습니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악하거나 비열한 사람이라기보다
세상적인 가치관과 문화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잘못과 죄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잘못 되었으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인격 자체를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대중 미디어들은 목회자들은 모두 부패한 사람들이고 크리스천들은 다 위선자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신실하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바른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중략....일반 미디어뿐만이 아니라 기독교 미디어 중에서도 교회를 바로 잡겠다는 목적으로 교회와 목회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하곤 합니다.
이런 비판이 필요하겠지만, 비판만으로는 무너뜨릴 수는 있어도 세우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비판의 방법이나 강도가 선량한 교인들로 하여금 목회자에 대해 냉소적인 자세를 갖게 하거나,
교회를 떠나게 만들지는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되어야할 교회가 수치를 심어드리고 있는 오늘날,
교회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가정교회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원칙, 소통, 섬김, 나눔을 추구하는 가정교회가 정착될 때에 교회를 병들게 하는
정직성, 정확성, 투명성의 문제는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