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포용합시다 (휴스톤서울교회 이수관 목사 글 )
제가 결혼 초기에 겪었던 일입니다.
제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단 말을 듣고 저희 형제들 부부가 모두 같이 문안을 간적이 있습니다.
도착해서 방에 들어가자마자, 저희 형제들의 아내들 중에서도 특별히 사교적이고 붙임성이 좋았던 제 아내가
“할머니, 많이 편찮으셨어요?” 하면서 바짝 다가가 앉았는데,
제 외할머니는 그 아픈 와중에서도 정색을 하시며, 이렇게 형제들이 모인 경우는 누구와 누구는 옆에 붙어 앉으면 안 된다는 등,
소위 양반의 법도에 따라 지적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나이 드신 어리신들과 친하고, 잘 섬기는 제 아내가 이렇게 무안을 당하고 난 그 날 이후부터
제 외할머니에게 잘 다가가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외할머니는 당신이 보시기에 옳은 것을 가르치다가 자신을 섬겨줄 수 있는 사람을 하나 잃은 것이지요.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에게 소중한 가치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되는데 빌려간 돈은 1불이라도 안 갚으면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다른 것은 엉망이면서 약속시간에 늦지 않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자기가 썩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보통 이런 경우는 의와 불의의 잣대가 그것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에 늦는 사람을 보면 다른 점이 아무리 좋아도 틀린 인간이라고 접고 들어가기가 일쑤이고
그런 면에서 자기 자신은 너무나 의로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살기 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집하고 살 때,
주위에 친구들은 자꾸 사라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외로와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친구가 떠나고 외로와지더라도 지켜야 할 올바른 가치관을 지키고 사는 것이라면 아름답겠지만,
많은 경우는 그런 양보할 수 없는 가치관을 놓고 세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회색지대의 가치관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입니다.
저희 부부가 젊은 청년들의 목장을 그런 대로 잘한다는 말을 가끔 듣는데,
청년들이 와서 잘 어울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크리스천으로서 지켜야 할 것은 양보하지 않지만,
그 외에 세대 차이에서 생기는 것에 대한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에 옷 입는 것, 화장하는 것, 머리 스타일, 예절, 절약하는 정신, 이런 문제로 잔소리를 하면
그들도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못 견딜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으며 잘 어울리시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아주 중요한 문제가 아니면 넘어가고 사람들의 차이를 포용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이고,
그에 반해, 외롭게 사는 분들의 특징은 자기 생각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고 사는 분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남을 받아 주는 사람이 되는 연습을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