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 대상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로 판단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 작품에 대해서는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기호 판단을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실이나 행동에 대해서는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는 진리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옳은 일을 할 수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른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우리는 감정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웬만하면 다 옳은 것이라고 믿어주려고 합니다.
반대로 내가 싫은 사람이면 그 동기까지도 의심하여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감정에 기반을 두니까 싫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뒤바뀌기도 합니다.
가수 싸이는 병역비리로 사람들의 지탄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국민적 영웅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가수 유승준은 사랑 받는 가수로 활동하다가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의 역적이 되었습니다.
미국 영주권자였던 유승준은 가수활동을 하면서 생긴 수익금 대부분을
장애인들과 고아, 빈곤층을 돕는데 썼다고 합니다.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연예활동을 하면서도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고 유흥가에도 기웃거리지 않아서 아름다운 청년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그런 그가 군입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자 갑자기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듯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오늘까지도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는 현대판 역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군입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는 군입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뿐이고 그것은 잘못한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대한민국에 입국할 수 없게 한것은 과도한 감정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치인을 평가할 때도 진리에 기반하기보다는 감정에 기반하여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박정희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가 한 일은 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가 한 일은 다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박정희도 잘한 일이 있고 못한 일이 있습니다.
노무현도 잘한 일이 있고 못한 일이 있습니다.
잘하면 100점이고 못하면 0점이 아니라 50점을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우리는 더욱더 진리에 기반을 두는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좋아도 틀린 것이 있고 싫어도 옳은 것이 있습니다.
'건방지다' '기분 나쁘다'만으로 진리를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