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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찌 할꼬(140316)
우리가 어찌 할꼬(행2:37-42)
베드로가 예수님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우리가 어찌 꼬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럽습니다.
혹시 우리의 영적 감각은 너무 무뎌지지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리 역사 앞에 던지는 파문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역사(History)는 그분의 이야기(His story)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입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사람들 모두를 합해도
예수님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이야기를 우리는 교회에서 매주 듣고 있지만
‘우리가 어찌할꼬’ 탄식하는 자기 결단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공자도 논어 <위령공편>에서 “어찌할꼬 어찌할꼬 하지 않는 사람은 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했는데,
공자도 간절히 찾고 묻는 자세가 진리를 얻는데 귀중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C.S.루이스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은 다음 셋 중 하나일거라고 추정했습니다.
정신병자이거나 사기꾼, 하나님의 아들.
정신병자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인줄 모르고 착각한 사람이고,
사기꾼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줄 알지만 일부러 속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신병자나 사기꾼도 예수를 따르면 정신이 맑아지고 진실해지는 임상학적인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분은 자신의 말대로 하나님의 아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 결론 앞에 루이스는 ‘나는 어찌할꼬’ 라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찌할꼬 라는 탄식이 없는 것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군중심리에 쏠리듯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설교의 결론으로 36절에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마음의 찔림이 있었고
그럼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탄식하고 제자들에게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자기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로 들으면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오늘 나의 이야기이고 그분의 십자가가 오늘 나의 십자가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탄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2천년전 한 사형수의 이야기로만 들으면 오늘 나하고 정말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분의 십자가에 대해서 들을 때 찔림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나 기도할 때나 찬송할 때나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찔림이 있습니까?
우리가 어찌할꼬 하는 탄식이 있습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을 돌이키는 회개가 있습니까?
베드로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여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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