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GE 회장이었던 젝웰치는 어릴 때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고 한다.
친구들과 놀다가 말더듬이라고 놀림을 받을 때마다 울면서 집에 들어올 때가 많았다.
한번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어린 젝웰치를 엄마가 안고 말했다.
"아들아, 너는 다른 친구들보다 생각의 속도가 빨라서,
말이 생각을 따라 갈 수 없어서 말이 금방 나오지 않는 거야.
너는 생각의 속도가 빨라서 아마 위대한 인물이 될 거야"
같은 내용도 이렇게 칭찬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바꾸었을 때 젝웰치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었다.
젝웰치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엄마의 격려가 자기 생애를 바꾸었다고 말한다.
좋은 말을 듣는 것이 우리 인생을 기름지게 만들어주고 부요하게 만들어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고 한다. 고래 중에 가장 크고 사나운 범고래를 조련하여 쇼를 하는데,
그 범고래를 조련할 때 가장 중요한 방법이 칭찬과 격려라고 한다.
자꾸 칭찬하면 그렇게 크고 사나운 고래도 춤을 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칭찬보다는 비난, 격려보다는 모욕을 당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교회에 와서 좋은 말씀을 듣고 격려를 받기보다 오히려 모욕을 받을 때도 있다.
그 때는 '교회가 왜 이래'하지 말고 '교회도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니까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말고 모욕을 자기 영적 훈련의 한 방편으로 삼으면 좋겠다.
신학교 다닐 때 여러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가 가끔 나를 찾아와서 자기를 모욕해 달라는 말을 해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며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기가 교만해져서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도 나와 친했던 그를 감히 모욕하지는 못했다.
중세 수도사들은 모욕당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영적 훈련의 하나로 삼았다고 한다.
모욕이 훈련이 되는 것은 모욕을 참을 수 있는 마음에서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사들은 훈련을 위해서 자기에게 모욕을 주며 화를 내게 만드는 사람들을 찾아 다녔다고 한다.
우리도 모욕을 받을 때가 있으면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두 가지 훈련을 해보면 좋겠다.
하나는 참는 훈련이고, 하나는 모욕 준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훈련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많은 모욕을 당하셨다.
그렇지만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고 사람들이 자기를 거역한 것을 참으셨다.(히12:2-3)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도 자신을 모욕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셨다.
모욕을 받는 것은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좋은 훈련이 된다고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