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고 있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애끓는 고통이 느껴졌습니다.
아직 꽃도 다 피우지 못한 푸르고 싱싱한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무수히 누워 있어야 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고난주간에 일어난 이번 사고를 보면서 예수님이 죽은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고도 역시 인재였습니다.
인재란 인간의 죄와 허물로 빚어진 결과입니다.
인간의 죄가 이런 악의 현실을 만들어 내어 무수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는 결국 인간에게 아픔을 주고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끔찍한 고통을 받고 죽으신 것은 이런 죄가 심판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죄가 사람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고 고통을 안겨 준만큼 그 죄에 대한 심판도 그만큼 고통스러워야 합니다.
죄가 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새벽기도회 시간에 십자가 위 고통과 아픔 속에서 찡그린 예수님의 얼굴 위에
아이를 잃고 피눈물을 흘리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십자가 아래에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당신이나 구원해 보라고 조롱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왜 당신은 이 사고를 지켜주지 못했습니까?
전능하신 분이신데 세월호가 사고를 당할 때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이런 생각이 떠올랐을 때 나도 주님을 조롱하던 무리 속에 있던 그 한 사람이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날 무리의 조롱에 아무런 대답하지 않으셨던 주님은 나의 질문에도 아무런 대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무력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계셨습니다.
사지가 묶여 꼼짝 못하는 개구리가 두 눈만 껌벅거리듯이 주님도 무력하였습니다.
그저 나도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통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당하는 악의 현실을 못 본 척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보고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함께 고통을 받고 계십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고통 속에 주님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조롱하는 무리들의 소리 속에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그분의 침묵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금요일은 끝이 아닙니다.
일요일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