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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칼럼은 미국 미네소타의 세인트 캐서린 대학교에서 신학과 영성을 가르치고 있는 조민아교수의 글로 대신합니다)

 

세상이 침몰했습니다.

생떼 같은 자식들은 바다에 있습니다.

살려 달라는 호소는 불통의 바리케이트에 막혀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 앞에서 몸부림치는 수백 명의 부모들에게 대체 무슨 말이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신학적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다 속에 아직 잠겨 있는 생명들과 울부짖는 부모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고통 받고 계시리라는 말도 저는 못하겠습니다.

신학으로 밥 먹고 사는 제게도 전혀 위로가 안 되는 그 말이 어떻게 부모들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느냐고 다그쳐 묻지 마십시오.

대체 무엇을 알고 싶은 것이며 알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겁니까.

답답해서 그러는 것 압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하나님, ?” “하나님, 어디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무너진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 우리 모두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에겐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선 애끓는 부모들이 그 분노를 토해 낼 수 있을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몸으로 마음으로 지켜 주어야 합니다.

섣부른 위로를 던지지 마십시오.

강도 만나 쓰러져 있는 이들 앞에서 의미 없는 말들을 쏟아 낼 것이 아니라,

패악한 무리들이 다시 찾아와 그들의 생명을 끊어 낼 수 없도록 안전한 여관에 눕히고,

그 몸이 식지 않도록 우리의 체온으로 덥혀 주고,

그 입에서 나오는 절절한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어야 합니다.

그들이 맘껏 가슴을 치고 바닥을 구르며 통곡할 수 있도록,

아무리 해도 삭지 않을 그 노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도록,

무능한 지도자들과 관료들에게 비난과 질타를 하고 싶다면 할 수 있도록,

청와대에 가고 싶다면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고 다리를 놓아주어야 합니다.

그들을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우리뿐입니다.

우리는 또 우리의 영혼이 증오에 침식되지 않도록 돌봐야 합니다.

오늘 겪고 있는 일들로 인해 우리가 넘어가야 할 증오의 시간들이 두렵습니다.

마치 남을 미워해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은 감정들이 삶을 장악하게 될지 모릅니다.

증오가 마침내 관계의 규범이 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너도 나도 미워할 대상을 찾는, 미워해야만 정의로울 것 같은 세상에서 결국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약자들입니다.

증오는 즉각적인 해소를 필요로 하기에, 우리의 시야를 좁히고 사고의 반경을 축소시키기 때문입니다.

 

실종자 부모들의 정당한 분노를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증오를 자제해야 합니다.

정황이 확실치 않은 정보를 퍼다 나르거나, 특정 진영의 이해타산을 부추기거나,

추측성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이야기하거나,

사건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는 개인을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거나 하는 일을 삼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의 삶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웃들과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 줍니다.

아무 관련이 없는 줄만 알았던 이들의 슬픔으로 인해 우리는 이렇게 울고, 이렇게 노여워합니다.

상처를 서로 보듬으며 함께 일어설 때 이 분노는 비로소 일관된 방향과 통로와 방식을 찾아 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또 무엇보다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 우리사회의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합니다. 괴로워도 똑똑히 보십시오.

우리가 얼마나 패악한 세상을 살아 왔는지, 살고 있는지.

세월호 침몰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물 선박, 형식뿐인 안전점검 시스템, 악조건에도 운항을 강행한 선박회사,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조차 모르는 선장과 선원들은 각각 퇴보하는 국가 정책,

 국민의 안녕에 전혀 관심 없는 행정 체계, 사용자 위주의 노동 시스템,

자신의 밥줄에만 관심 있는 관리자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비겁하고 약아빠진 언론은 우리가 이 현실을 보고 듣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무지와 오류를 확대 재생산하며, 우리의 관심을 이해타산의 논리로 몰아가고,

우리의 희망을 잔인하게 이용합니다.

 

만신창이가 되어 삐그덕 거리는 이 사회의 가장 위에 상명하달 식으로 군림하는 정부가 있습니다.

아무리 다급한 일일지라도 상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그들,

죽어 가는 생명들을 수색하기 위한 인원을 불러 고위 관리들과 국회의원들의 의전에 동원하는 그들,

일분일초가 아까운 현실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문제를 해결할 아무 능력도 없는 그들,

그들이 지휘권을 쥐고 있는 이 믿기 힘든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편을 갈라 남 탓 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의 가슴을 치고 회개하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쳐 나가야 합니다. 혹시나 우리 모두가 비탄에 빠져 있는 이 순간을 이용해

그들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르지 않을지, 두 눈 부릅뜨고 밤새워 지켜봐야 합니다.

 

올해 저는 부활한 그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아직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고,

저는 축축한 그분의 무덤가를 헤맵니다.

 아마도 한동안 저는 그분을 만나지 못한 채 그분의 무덤 앞을 서성이며 길고 긴 토요일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칠흙 같은 밤,

아직 의미를 찾기 힘든 그분의 부활을 묵상하는 대신

그분의 죽음을 마음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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