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란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컴퓨터에 관심이 있는 젊은 사람이라면 리눅스라는 운영체계의 이름으로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본래 이 말은 아프리카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 중이던 어느 인류학자가 한 부족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나무 옆에 싱싱하고 달콤한 과일들로 가득 찬 바구니를 놓고,
누구든지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 한 것입니다.
인류학자의 말이 통역관을 통해 전달되자마자 아이들은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구니에 다다른 아이들은 모두 함께 둘러앉아
입 안 가득 과일을 베어 물고 키득거리며 재미나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가 아이들에게 누구든 1등으로 간 사람에게 과일을 몽땅 주려고 했는데 왜 손잡고 함께 달렸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의 입에서 한 단어가 합창하듯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분투!’ 그리고 한 아이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머지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데 어떻게 나만 기분이 좋을 수 있나요?"
우분투는 남아프리카의 코사족과 줄루족 등 여러 부족들이 사용하는 인사말이라고 하는데,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들 부족은 만날 때마다 '우분투!'하고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남아프리카는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지역이었습니다.
많은 흑인들이 인종차별로 고통을 당했지만 훗날 차별정책이 무너졌을 때 그들은 백인들을 향해서
'우분투!'라고 외쳤습니다. 이 정신이 백인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였습니다.
작년 10월 7일, 82회 생일을 맞은 남아프리카 진실과 화해 위원장이었던 투투 대주교는
자신이 거주하는 케이프타운 빈민촌에서 쓰레기 줍는 행사로 자신의 생일잔치를 대신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분투 정신으로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시 가운데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한 부분입니다.
"물이 많아서 산 그림자를 길게 안고 있고/
산이 높아서 물을 깊고 푸르게 만들어 주듯이/
그렇게 함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과 산은 다르지만 서로 배척하지 않습니다.
물은 물대로 산 그림자를 길게 안아주어서 좋고,
산은 산대로 높아서 물을 깊고 푸르게 만들어 주어서 좋습니다.
서로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그런 모습이라는 시입니다.
자기만 챙기는 이기적인 모습이 오늘 이 사회의 얼굴이고 오늘 우리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욱 쓸쓸해지는 요즘입니다.
신앙인인 우리조차도 이기적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