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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울게 하소서(느1:1-5)
오늘날 세상의 주도적인 가치관은 이기주의이다.
남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던지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
세상 사람들이 보는 시각에서 보면 교회나 그리스도인들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느헤미야는 이런 이기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페르시아 궁전에서 왕의 술 관원이었다.
술 관원은 왕이 먹는 모든 음식을 미리 맛보고 검사하는 직책이다.
그래서 왕의 신임을 듬뿍 받는 자가 이 일을 맡게 된다.
오늘날로 말하면 대통령 비서실장 노릇을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느헤미야는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의 후손이었지만 이방 땅 페르시아에서 크게 출세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출세와 명예에 안주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 동족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자기 친척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 다녀왔는데
느헤미야는 이 친척에게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어보았다.
친척으로부터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졌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큰 환난과 능욕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이 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며칠간 울면서 금식하였다.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은 느헤미야와 상관없는 곳일 수도 있다.
그곳은 자기고 살던 곳에서 1,5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고 자기는 이곳에서 태어난 그 쪽의 후손일 뿐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하고는 직접적인 관계도 없다.
느헤미야는 선지자나 제사장도 아니다. 페르시아의 국가 공무원일 뿐이다.
그런데도 느헤미야는 마치 자기 일처럼 그들의 고통에 오열한다.
여러분은 자신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의 고통을 보고 눈물 지어본 적이 있는가?
그리스도인이란 이웃의 아픔에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다.
죄는 자기 자신의 중심을 파고드는 속성이 있는 반면에
죄를 극복하고 구원 받은 자는 자기 자신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구원 받은 사람의 표지이다.
느헤미야는 어떻게 해서 고국의 상황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는가?
느헤미야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었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자녀들이다.
자녀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면 그들 보다 더 아파하는 분이 부모님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 때 누가 가장 힘들고 아파했을까?
아마 하나님일 것이다.
하나님이 누구보다도 가슴을 찢는 아픔을 당했을 것이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에 대해서 같이 고통을 느끼고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에 대해서 함께 오열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시선이 있는 곳에 그의 시선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의 마음을 두니까
멀리 떨어져 있는 그 백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느헤미야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눈물로 기도하면서 준비하여 성벽을 완성하였다.
우리는 느헤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은 오늘 무엇을 아파하시고 슬퍼하실까?
그분의 마음이 가는 곳에 우리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교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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