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작은 축구공 하나에 전 세계 사람들이 울고 웃는다.
개막전에서 스페인은 네덜란드에게 5:1로 참패를 당했다.
전년도 우승국인데 체면이 말이 아니다.
당장 자국 기자들은 치욕적인 패배라고 선수들에게 온갖 비판을 쏟아냈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기사를 유심히 챙겨 보았다.
월드컵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도 우리 선수들에게
흥분하며 소리 지르고 비판도 할 것이다.
패배한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거국적 비난을 받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로마 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면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는 생명을 걸고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흥분하고 소리를 지른다.
일단 관중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가 없거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감독이나 선수에게
비판을 쏟아내고 불평한다.
하나님의 일에도 선수가 있고 관중이 있다.
선수는 죽어라 뛰고 있는데, 관중석에 앉은 사람은 재미가 없다며 불평하고 비판한다.
대체로 원망과 비판은 구경꾼을 통해서 나온다.
교회 안에서도 비판하는 사람은 대개 구경꾼인 경우가 많다.
자신이 직접 맡아서 책임지고 있지 않는 사람이기에 쉽게 평가하고 비평할 수 있는 것 같다.
또 이런 비평의 내용은 적절한 경우도 많다.
장기 두는 사람보다 훈수 두는 사람이 길을 더 잘 본다고 한다.
직접 뛰고 있을 때는 승부욕 때문에 시야가 좁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경꾼의 비평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는 교회에서 나오는 비평의 소리를 함부로 여기지 않는다.
나도 고쳐야 할 부분은 잘 새겨서 듣는다.
문제는 선수보다 관람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관람객 한 사람이 한 마디씩만해도 잘 새겨 듣는 것이 쉽지 않다.
듣다가 나도 모르게 저항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영적 군사로 부름을 받은 영적 전사들이다.
우리가 탄 교회라는 배는 유람선이 아니라 전투함이다.
전투함을 탄 병사들은 모두 자기 직분을 가지고 유사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구경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선수들이다. 그리고 오직 선수들만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있다.
열심히 뛰어서 주님으로부터 면류관 받고 상급을 받는 영광을 누려야 하겠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