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도미니크 보비는 프랑스 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습니다.
1995년 12월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44세의 나이에 전신마비가 된 것입니다
그의 육체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눈꺼풀 근육이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1년 3개월 동안 왼쪽 눈을 수십만 번 이상 깜빡거려 책을 썼습니다.
그의 몸은 잠수함처럼 갇혀 있지만 영혼은 나비처럼 자유롭다고 해서 책 제목을 '잠수복과 나비'라고 했습니다.
책 첫머리에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뇌성소아마비 시인인 송명희씨도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불로 덮고 자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앉아서 똑바로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내 손으로 밥을 먹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정도라면 우리에게도 감사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높아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가난한 마음을 가졌던 구상 시인은 봄을 만나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개인 것도 이적에나 접한 듯 새삼 놀라웁고
창 밖 울타리 한 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의 시범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손가락이 열 개 인 것이 기적처럼 놀랍다는 시인의 마음이 부럽습니다.
제가 다윗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다윗이 가난한 영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3편에서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5) 라고 했습니다.
누워서 자고 아침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이 붙잡아 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소박한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시편 16편에서는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한다”(7)고 했습니다.
심장이 무슨 교훈을 하겠습니까?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내가 이 심장을 뛰게 하도록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았는데
이렇게 열심히 뛰는 것을 보니 주님의 은혜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역시 가난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어떤 감사를 주님께 올려 드려야 할까요?
마땅히 드릴 감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이 비대해졌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마르센이라는 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가난한 마음으로 보는 것이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기도해 봅시다.
주여, 가난한 마음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