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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140831)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인생을 살면서 넘어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본문에도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라고 하였다.
의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말하는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일곱 번 넘어질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일곱 번이란 햇수가 아니다.
완전수다. 즉 수없이 많이 넘어졌다는 뜻이다.
우리는 수없이 많이 넘어지면서 살아가야 한다.
아기로 태어나서 제대로 걷기까지 수도 없이 넘어진다.
10대가 되면 자기외모나 실력, 그리고 가정형편으로 인한 비교의식과 열등감 때문에 수없이 넘어진다.
20, 30대는 인생에서 가장 많이 넘어지는 때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기반을 잡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많은 도전을 해야 하는데 그 도전의 숫자만큼 넘어질 수 있다.
40대는 가장 고독한 시기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중 자살률 1위인데 그 가운데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연령대가 40대이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 끼이고 부하 직원과 상사들 사이에 끼여서 자기를 찾을 수 없는 혼돈을 느끼고 수없이 넘어진다.
50대가 되면 언제든지 직장에서 나갈 수 있다는 불안과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한다.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 동안 수없이 넘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가르쳐 주는 곳은 없다.
오히려 넘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성경은 우리가 넘어졌을 때 어떻게 일어 날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들과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성경은 초지일관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준다.
창세기 벽두에서 인간은 넘어졌다.
그리고 어떻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지 성경은 말해준다.
성경은 넘어져서 일어나는 법과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 다윗, 베드로 등등.
그들이 몇 번 넘어진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넘어진 숫자보다 한번 더 일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의인은 일곱 번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악인은 재앙으로 엎드러진다.
의인과 악인은 다 함께 넘어졌지만 의인은 다시 일어났고 악인은 엎드려져 있다.
그렇다면 의인은 악인보다 의지가 더 강하고 심지가 더 질긴 사람이라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여기서 주인공은 의인이 아니다.
넘어진 의인을 다시 붙잡아 세워주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뜻이다.
같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에게 사람은 투자하지 않는다.
한두 번 속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넘어지면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곱 번 넘어진 자를 외면하지 않고 붙잡아 주셔서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다.
이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을 보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의 손길은 때로 말씀으로 때로 친구들의 위로로 때로 성도들의 손길로 다가온다.
야곱에게는 사닥다리로 다가오고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로 다가온 것처럼 말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손길을 내밀고 계신다.
넘어져 있는가?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길 바란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다시 일어나는 것이 믿음의 사람이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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