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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대하라(요5:1-9)
새해에 하나님을 좀 더 기대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기대하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노숙자가 되는 것은 먹을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희망을 잃는 것은 살아갈 힘을 잃는다는 뜻이다. 심신의학에서는 희망이 육체의 호르몬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그래서 희망의 불이 꺼지는 순간 육체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고 한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희망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기대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희망할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하나님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에서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하나님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면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기대가 없는 것은 한마디로 그 존재를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가장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된다.
기대의 끈을 놓쳐버리면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잠을 자게 된다. 기대하지 않는 마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으로 10년을 보내면 10년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을 고치실 때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하는 것이 기대하는 마음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물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당연한 질문이다. 나으려고 베데스다 연못가에 와 있다. 물이 동할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자가 치료된다는 전설을 가진 못이다. 그는 38년 동안 치료되지 못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입수를 시도했지만, 실패가 반복되면서 점점 희망을 잃어버렸다.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실패의식이다. 38년 동안 굳은 몸보다 더 큰 문제는 굳어진 마음이다. 38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 보라.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그것이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났다. 이제 더 이상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자신의 처지에 익숙해진다. 신기한 것은 고통도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죄를 지을 때도 처음에는 치를 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다.
우리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익숙해진 것이 많다. 반드시 변화되어야 함을 알고 있음에도 그럭저럭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은 38년 동안 병든 마음을 보신다. 그리고 그 깊은 내면을 만지신다. 네가 정말 변화되기를 원하느냐? 겉으로 드러난 질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무섭다. 역사가 일어나려면 먼저 마음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스스로 자신의 삶에 결론을 내리고 움직이지 않고 안주하려는 그 마음에는 어떤 기적도 일어날 수 없다. 주님은 굳어진 우리 마음을 살려내기 위해서 우리 입에서 “네, 낫고 싶습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삶을 청산하고 싶습니다. 변화되고 싶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질문은 형식적인 질문이 아니다. 얼어붙은 심령 가운데 뭔가 마음의 문이 열려지기 원하는 주님의 뜻이 담겨 있다. 주님은 먼저 찾아오셨다. 희망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자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신다. 이 말씀대로 그 사람은 일어나서 그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그 자리는 운명과 탄식으로 얼룩진 자리다. 자기 힘으로 일어 설 수 없었던 자리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그는 변화되었고 새로워졌다. 이 놀라운 변화를 사모하자. 그리고 주님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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