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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소금으로(마5:13-16)
요즘 박항서 감독을 보면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생각하게 된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올라갔다고 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든다. 한 국가가 이루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이 이루고 있다. 교회를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에 편의점 숫자가 25,000개라고 하는데 교회 숫자는 78,000개라고 한다. 이 숫자만큼 교회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까?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했다. 소금과 빛은 당시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었다. 아무리 가난해도 이것만큼은 가지고 있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고, 빛은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아무리 작은 양의 소금이라도 음식 맛을 결정할 수 있고, 아주 작은 빛이라도 캄캄한 어둠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런 존재라고 하신다.
빛과 소금을 생각할 때 먼저 두 가지 살필 것이 있다. 첫째, 주님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거나 빛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소금과 빛은 행위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소금이 짠맛을 내고 빛이 밝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의도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빛이고 소금이다. 됨됨이가 소금이고 빛이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이 우리를 그런 존재로 세워주시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씀은 부담을 주려는 말씀이 아니라 축복의 말씀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둘째, 소금과 빛보다 더 주목해야 할 단어가 ‘세상’이라는 말이다. 소금과 빛은 무엇 무엇에 대한 소금과 빛이다. 즉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다. 내가 빛인가 소금인가보다도 내가 누구에게 빛의 혜택을 주느냐, 누구에게 소금의 혜택을 주고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빛과 소금은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일관된 관심사다. 소돔과 고모라는 왜 망했을까? 죄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의인이 부족해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악을 막아서는 의인의 삶을 살라는 뜻이다.(창18:19)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다.(출19:6)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자다. 혼자만 잘먹고 잘살라고 출애굽시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세상이 들어 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했다. 로마 황제의 통치를 받는 나라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나 혼자만의 소원과 관심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주변을 둘러보고 먼저 가까운 곳에서부터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도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한다. 다음 세대에 대한 우리의 책임도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면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가장 가까운 영역이다.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서 우리를 초청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고 알려주셨기에 우리가 그 선교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위대한 과업에 부름을 받는 것은 특권이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머문 곳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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