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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산다는 것은(히11:1-3)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흔히 믿음은 주관적 확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본문은 믿음이 실상과 증거, 즉 객관적 실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있는 그대로의 실상과 증거가 아니고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바라는 것들’은 미래의 소망이고 꿈이다. 믿음은 미래에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들을 지금 현재 보는 것이다. 여기서 바라는 것은 개인의 소원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모두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모두 진심으로 바라야 하는 것은 개인의 사소한 소망도 있겠지만, 우선 구원을 받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 바라는 것은 미래에 일어나는 일이고 아직 우리 앞에서 실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것을 지금 현실이 되도록 하는 힘이 믿음이다.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대개 현재를 과거의 산물로 여긴다. 과거에 원인이 있었기에 지금 현재 이런 결과가 되었다고 믿는 것을 소위 ‘결정론’이라고 한다. 결정론의 문제는 현재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지만, 현재를 바꿀 수는 없다. 결정론자에게 현재는 이미 닫힌 세계이고 끝난 현실이다. 그래서 현실에 대해서 숙명론자이고 운명론자이다. 유대인들에게 현실은 결정된 사실이지만 미래 마지막 날이 되면 모든 것이 완성된다. 지금 해결하지 못한 고통이나 아픔도 그날이 되면 다 해결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미래에 올 그 날이 이미 가까이 왔다고 했다. 어떻게 미래가 가까이 올 수 있는가? 예수님 안에서 가까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즉 예수님 안에서 미래가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서 미래가 현실이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는 미래 바라는 것들이 예수님 안에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안에서 이미 구원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우리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두 세계를 살고 있다. 보인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경험으로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눈으로도, 생각으로나 경험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 즉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을 경험한 것이 되게 한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는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손을 잡아 일으킬 때 믿음으로 일어나 걸었다. 그에게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믿음은 그런 일을 보게 한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끊임없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다.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분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어떻게 되는가? 선진들이 믿음으로써 증거를 얻었다. 이렇게 했더니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고, 보이지 않는 분을 정말 보는 것처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창조 세계가 원래 그렇다. 보이는 세계는 스스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의해서 보여지게 된 것이다. 믿음은 보이는 세계를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 분을 생각하고 살아가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분을 보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가는 믿음의 선진들이 모두 증거를 얻었고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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