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 가운데 우리가 가장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이 ‘일상’인 것 같습니다. 먹고, 마시고, 쉬고, 공부하고, 살림하는 일상의 일들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경건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일상의 활동을 최소화하고 그 자리를 종교적 활동으로 채우는 것이 경건한 삶의 핵심이라고 여깁니다. 왜 이들은 일상을 이처럼 과소평가할까요?
아마 일상의 평범함과 반복성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링컨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래서 그들을 그처럼 많이 만드셨다” 우리는 평범함의 가치를 낮게 여깁니다. 평범함을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제쳐두고 특별한 기적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꽃말이 ‘행복’인 평범한 세잎 클로버를 옆에 두고, “행운”이 꽃말인 네잎 클로버를 찾으려고 기를 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확실히 수고롭게 땅을 일구는 것보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모으는 일이 훨씬 대단해 보이는 일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 중에서 농삿일은 뒷전에 미루어놓고 내리지도 않는 만나를 얻기 위해서 광야로 나간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엘리야처럼 까마귀가 물어다 준 고기를 먹는 것이 일상의 먹거리보다 더 신령한 음식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일상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또 다른 이유는 일상의 반복성 때문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일은 아무래도 귀하게 여기기 힘듭니다. 애써 위로 밀어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이 확실하다면, 또다시 밀어 올리는 수고는 어리석고 무가치게 하게 여기질 것입니다. 나치의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가혹한 고문이 아니라 흙더미를 반복적으로 옮기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복적인 일이라고 반드시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신자에게 반복적 일상은 하나님이 거듭거듭 임하는 임재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조로운 반복처럼 보이는 우리의 일상을 풍성한 의미를 지닌 질그릇처럼 빚어가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쓰신 것도 다윗이 양을 치는 목동의 일을 성실하게 잘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부름을 받았을 때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도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그들의 일상에 들어오셔서 그들 속에 임재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신약시대에 주님은 우리 몸을 성전 삼고 우리 몸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잠자는 일도 주님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터전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일상은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처소가 되었고 우리는 날마다 일상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상의 평범함과 반복성은 신자가 기쁘게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일상은 무의미한 시간이 반복되는 현장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이고, 순간순간마다 주의 임재를 누리는 지성소입니다. 매일 특별한 기적이나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여기서 함께 해주시는 주의 은혜를 발견하고 누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