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습니다.
짐승이 다니는 길이 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이 있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이 있고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으며, 배가 다니는 길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길 위를 다니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누군가는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철학자들은 좀 더 어렵게 이야기해서 인간을 ‘도상의 존재’라고 합니다.
길 위에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미국에 있는 어느 교회 이름이 "길 위에 있는 교회"라는 것을 알고 참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경 속에서 순례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주실 땅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출애굽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약속의 땅을 향해서 끝없이 걸어갔습니다.
순례자의 이미지는 성도가 이 땅의 도성에 매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나라를 향해 끝없이 가는 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역시도 길 위에 있는 존재입니다.
교회는 가장 좋은 길목에 터 잡고 뿌리 내리고 조직이 아닙니다.
구약 백성들이 성막을 어깨에 메고 여기저기 옮겨 다녔듯이, 교회는 주님이 인도하는 곳으로 즉시 길을 떠나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안주할 수 없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해서 꽃향기 바람에 날리는 낭만적인 길이 아닙니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주님은 가끔 당신의 손을 더 굳게 붙잡게 하시려고 일부러 어려운 길로 가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뒤에는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이 길의 날씨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고,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가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믿음 좋다고, 기도 많이 한다고 안개가 즉시 걷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안개 속을 걸어가는 법을 알려주시고 길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십니다.
험한 길을 가다 보면 쉽게 지치고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는 도중에 넘어졌다고 해서 산밑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어디에서 넘어졌든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서 길을 계속 가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벽주의입니다.
완벽주의의 오류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새 출발을 지연시키는 데 있습니다.
이 길은 남이 대신 가 줄 수 없는, 내가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우리 각자가 길 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홀로 걷지 않습니다. 서로 동반자가 되어 끝까지 함께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은 이 길 끝에서 만나기를 소망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