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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믿음(마25:1-13)
우리는 모두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가 끝에 도달하기도 전에 세상이 먼저 끝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먼저이든지 종말이 온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그렇다면 종말이 오기까지 우리는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 본문에서 예수님은 열 처녀를 언급하면서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이 비유의 결론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13절)는 것이다. 우리가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종말에 대해서 말씀하면서 혼인 잔치에 비유하고 있다. 혼인 잔치는 세상에서 가장 흐뭇하고 즐거운 잔치이다. 그래서 종말은 파국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잔치이다. 그날은 세상에 있는 어떤 즐거운 잔치보다 더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상에 있는 어떤 최선의 날과도 비교할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한 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혼인 잔치를 기다리는 사람 중에 미련한 자가 있고 슬기로운 자가 있다고 한다.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는 신부의 들러리인 것 같다. 그들 모두는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등불을 밝히고 있다. 신랑이 예상보다 늦게 왔으므로 열 처녀는 모두 졸고 잤다. 신랑이 도착했을 때 신랑을 맞이하러 나갔지만, 그때 다섯 처녀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었다. 그들은 준비된 기름이 부족했기에 나머지 다섯 처녀에게 좀 나눠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할 수 없이 기름을 사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사이 신랑은 들어갔고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이 비유의 결론에 주님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13절)고 했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잠을 자지 말고 철야기도를 하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사실 열 처녀 모두 잠을 잤다. 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준비는 기다리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에서 주님의 오심이라는 주제를 잊지 말고 어떤 삶의 자리에서도 주님의 오심이라는 주제가 살아서 꿈틀거리도록 살라는 것이다. 주님과 만남에 대한 기다림이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치는데까지 나가야 한다. 기다린다는 것은 기다림의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나가서 통치를 받는다는 뜻이다. 참된 제자는 주님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재림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데, 기름은 무엇일까? 혹자는 성령이라고 하거나 기도라고도 하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그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기름이 자꾸 타들어가기 때문에 여분의 기름이 필요하다. 기름은 계속 보충되어야 한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다. 예수님을 한번 믿었던 그 옛날의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옛날 한번 믿었던 그 믿음을 그대로 버려두면 메말라버리고 불이 꺼져버린다. 우리 믿음이 계속 살아 있도록 공급되고 보충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한때 불타오르다가 꺼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살아 있지 않은 믿음은 가짜 믿음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영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 꺼질 수 없는 생명이다. 주님을 향한 목마름과 사모함으로 준비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기다리고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이 그 믿음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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