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스윈돌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생은 사건 10%와 그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반응 90%로 이루어진다.
인생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우리 삶에 일어난 사건 사건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상황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데, 그 해석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삶의 덫이 될 수도 있다.”
가령,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보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 차 있다”로, 어떤 사람은 “물이 반이 비었다”라고 해석합니다.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새를 보고, 어떤 사람은 “새가 노래한다”라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새가 운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결과가 확연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소망으로 활기차게 살아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고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부정적인 해석으로 부정적인 일을 불러들일 수도 있고, 긍정적인 해석으로 긍정적인 일을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노년이 되면 몸의 활력이 떨어지고 신체 기능이 쇠퇴하게 됩니다.
이런 우울한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지만, 이것도 다 해석하기 나름입니다.
노년에 시력이 나빠지는 것은 작은 것을 보지 말고, 큰 것을 보고 살라는 뜻입니다.
귀가 안 들리는 것은 필요 없는 작은 소리는 듣지 말고, 큰 소리만 들으라는 뜻입니다.
말이 느리고 어눌 해지는 것은 많이 듣고 잘 들어서 필요한 말만 하라는 뜻이고,
이가 시리고 약해지는 것은 따뜻하고 연한 음식을 먹어서 소화불량이 없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것은 매사에 조심하고 멀리 나가지 말라는 뜻이고,
허리가 굽어 지는 것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면서 겸손하게 자기를 돌아보며 살라는 뜻입니다.
머리가 하얗게 새는 것은 멀리 있어도 나이가 든 사람인 것을 알아보게 하여 조심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정신이 자주 깜빡하는 것은 살아온 복잡한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고, 다가올 천국만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체의 변화를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살다 보면 많은 사건과 일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살이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는 누구에게나 대동소이하게 다가옵니다.
나만 어려움을 겪는 것이고, 나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고, 나만 일이 안 풀리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 젖으며 흔들리며 인생은 자라고 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성도의 최종해석은 무엇이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