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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라 임마누엘(출3:11-15)
모세는 광야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라고 하신다. 이 부름 앞에 모세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누구신가?’이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야 하느냐’ 하는 질문에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대답하셨다. 모세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였다. ‘에흐예’라는 동사 두 개를 연결해서 하나님 이름을 말했다. 에흐예는 그냥 ‘있다’ 혹은 ‘이다’라는 동사다. 개역 성경은 ‘있다’라고 해석해서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 성경은 ‘이다’라고 해석해서 ‘나는 나다’라고 번역했다. 시제는 ‘미완료’라고 해서 아직 행동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있어왔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부모 때문에 존재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언제 존재하시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 이삭 때, 야곱 때에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지금 불붙은 떨기나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과거에도 계셨고 앞으로도 그 백성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어떻게 계시는가?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 계시고 부름받은 사람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함께 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다양한 분으로 경험될 수 있다. 목마른 자에게는 생수가 되고, 배고픈 자에게는 생명의 떡이 된다. 신약에 가면 예수님이 오시는데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는 있다, 나는 지금 너희와 함께 있다는 뜻이라고 하면, 예수님의 이름인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요한복음1:1에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요한복음 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셨다.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텐트를 쳤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 땅에 텐트를 치신 것이다. 요즘 세상이 험악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대결, 일본의 오만한 모습, 북한 도발 등 우리 사회가 불안한 모습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나아가야될 줄 믿는다.
하나님이 이름을 가르쳐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이름이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라면, 지금 이곳에 내가 함께 하고 있으니 나를 좀 찾아서 붙들라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법을 지키고 윤리를 지키고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과 함께 우리가 손을 잡고 걸어가시는 것을 더 원하신다. 우리 스스로 법을 지킬 능력이 없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것인데 그 하나님을 붙잡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신앙 인생에서 가장 큰 위협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붙잡지 않는 것이다. 특히 고난의 시간에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욥도 많이 흔들렸지만 알고 보면 욥이 모르는 곳에 주님은 두 눈을 부릅떠고 지켜보고 계셨다. 욥이 함께 하시는 주님을 끝까지 붙잡으려고 했을 때 욥기 마지막 장면에서 “이제까지는 하나님을 귀로 들었더니 이제는 눈으로 본다”고 고백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붙잡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는 그분의 이름을 알려주신 하나님의 뜻인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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