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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힘을 얻으리니(사40:27-31)
본문에 ‘피곤’, ‘곤비’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다. 더구나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장정이라도 넘어진다고 했다. 이게 하나님 백성들의 현 상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포로 생활을 하고 있다. 포로 생활의 특징은 끌려가고 의도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한다. 현대인들은 상업주의와 경쟁사회에 포로된 상태다. 따라서 피곤한 삶은 당연한 것 같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하나님이 나를 돌보지 않고 나의 억울함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고 원망한다.(27절) 본문은 이런 육적, 영적 피곤함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하게 알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고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세상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세상은 우리의 힘을 빼앗아 가지만 하나님은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명철이 한이 없는 분이라서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신다. 그래서 또 하나는 그 하나님이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우리는 피곤하지만, 하나님은 피곤치 않을 뿐만 아니라 피곤한 자를 아시고 그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 힘을 본문에서는 “새 힘을 얻으니리”라고 했다. 세상이 주는 힘과 다른 새 힘이다. 기존에 있는 힘과 다른 새 힘이다.
이 새 힘을 본문은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힘이라고 한다. 독수리는 유일하게 날개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승기류를 타고 비행하는 새다. 원래 우리가 가진 힘이 오리가 스스로 걷는 힘이라면 새 힘은 위로부터 부어지는 힘으로 비상하는 독수리 같은 힘이다. 우리에게 이런 힘이 생기면 아무리 큰 문제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짐이 무거워도 감당할 힘이 있으면 괜찮다. 아무리 병이 깊어도 그 병을 이길 생명의 힘이 있으면 괜찮다. 문제는 힘이다. 왜 중간에 포기하는가? 힘이 딸리니까 그런 것이다. 그런데 새 힘이 있다고 한다.
이 힘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을 것이라고 한다. 앙망이라는 단어의 뜻은 직선으로 바라보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점과 점이 직선으로 연결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직선거리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어 하나님의 힘을 내가 공유한다는 뜻이다. 공유한다는 것은 특별한 관계라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유하는 관계다. 부부가 공유하는 관계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힘이 나의 힘이 되고, 주님의 권세가 나의 권세가 된다. 우리는 주님을 앙망하여 영적 끈으로 주님과 연결된 삶을 살 수 있다.
자기 힘으로 살면 우리가 가진 힘이 다 소진될 수밖에 없다. 지구상에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도 6킬로미터 정도 뛰면 주저 앉는다고 한다. 주님은 우리가 치타처럼 힘을 내서 달리라고 하지 않는다. 상승기류의 힘으로 독수리가 올라가듯이 주님이 주시는 힘을 공유하면서 살라고 하신다. 힘없는 아기를 업은 엄마가 밤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기라는 인격이 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힘없는 인격도 힘이 되는데,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땅끝까지 창조하신 살아계신 인격이 되시는 분이시다. 주님은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기 우리는 새힘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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