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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누리려면(요16:33)
어떤 사람의 사연을 소개해보자. 1남 4녀의 화목한 가정이다. 어느 날 병으로 맏아들이 세상을 떠났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에 불이 나서 모든 재산을 다 잃게 된다. 네 딸과 엄마는 슬픔을 삭히기 위해 여행하던 중에 사고가 나서 네 명의 딸을 전부 잃고 엄마만 살아남는다. 아빠는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 엄마는 혼자 살아났다는 미안함으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 때 일어난 실화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당사자인 스패포드는 찬송가 413장의 시를 짓는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그는 평안하고 다 잘 되고 행복할 때, 내 영혼 평안해 라고 한 것이 아니다. 고통 중에서 절규하듯이 ‘내 영혼 평안해’라고 했다.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 상황에서 내 영혼 평안해를 외칠 수 있었을까? 본문에 세 가지 힌트가 있다.
첫째, 주안에서 있을 때 평안할 수 있다.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어느 미술대회에서 평안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최우수작은 폭풍이 불고 세찬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 안에 있는 둥지에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새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평안은 외적인 고통이 없이 없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어미 품에 안긴 새끼 새처럼 주님안에 있을 때 평안할 수 있다.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평안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둘째, 담대할 때 평안할 수 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주님의 사랑 안에 있을 때도 담대하지 못하면 평안을 누릴 수 없다. 어릴 때 마당에 있는 변소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때마다 할머니를 깨워서 함께 갔다. 변소 안에서도 무서워서 할머니가 밖에 있는 것을 계속 확인했다. 할머니에게 초점을 맞출 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담대함은 주님에게 시선을 고정할 때 생기는 것이다. 베드로는 물 위에 서 있는 주님에게 시선을 고정할 때는 담대했지만 파도를 보았을 때는 두려워서 빠지게 되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신뢰할 때 평안할 수 있다.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을 이겼기 때문에 너희도 이길 것이라는 뜻이다. 내가 승리할 것이라는 주님의 뜻을 신뢰할 때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주님은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하면서 너희도 이길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주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이겼으니 너희도 이길 것이라는 주의 뜻을 신뢰하면 된다.
힘을 낼 수 없고,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큰 아픔에 있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걸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 안에 거할 수 있고, 그분을 바라보면서 담대할 수 있고, 그분의 뜻을 신뢰할 수 있다. 임직받은 분, 은퇴하신 분, 명예권사로 추대받으시는 분 모두 험한 세상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고 살면서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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