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동물처럼 밥만 먹고 살지 못합니다.
세끼 먹는 게 안정되면 더 잘 먹고 싶어지고, 그리고 나면 자기 이름에도 광약을 바르고 싶어지는 것 같습니다.
수재의연금이라고 백만원을 들고 와서 이 돈이면 신문에 날 수 있느냐고 묻고는 담당 직원이 아니라고 하니 돈을 도로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사람들은 자기 이름 내기를 좋아합니다.
창세기 11장에서 사람들이 하늘에 닿는 건축물을 만들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우리나라 사람처럼 이름에 관심이 많은 민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시원치 않은 것은 아예 “이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메이커’라고 하면 ‘유명 메이커’에 한정하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상표가 아니면 서슴없이 ‘메이커’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처럼 이름없는 것은 존재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가리워졌으나 빛나는 이름을 가진 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이 공들여 광을 내고 있어서 마지막 날에야 비로소 빛날 이름들이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잠깐 유명해지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어디서 유명해질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자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사람에게 판단 받는 일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전4:3)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주님이 오시는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고 했습니다.
여기서 ‘각 사람’ 자리에 내 이름을 끼워 넣을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