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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심대로 산다는 것(행8:26-40)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26절에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하니 그 길은 광야라”고 했다. 성경 원문에 광야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로 되어 있다. 빌립은 헬라의 합리적 교육을 받은 초대교회 지도자이다.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질서정연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주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길로 인도한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더 분명하고 확실한 길로 가고 싶어 하는데, 주님은 사람이 다니지도 않는 불안정한 곳, 불확실한 곳으로 인도한다.
인도할 때의 시점도 중요하다. 그때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사야서를 읽다가 의미를 잘 모르고 있을 때였다. 그때는 마침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부흥을 경험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주님은 그 좋은 사마리아를 버려두고 광야로 가라고 하신다. 빌립은 그때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때는 빌립 자신의 때가 아니라 에디오피아 내시의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의 인도하심은 내 때에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필요의 때에 맞추어지는 것이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성경을 읽고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할 때를 맞추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내시에게 맞추어졌다. 하나님의 때는 필요를 채움받아야 할 사람들의 때에 맞추어진다. 그래서 빌립은 여기저기 옮겨다닐 수밖에 없다.(40절)
빌립이 하나님의 때에 여기저기 움직이는 것은 불이익이 된다. 사마리아에서 남아서 사역하면 더 많은 부흥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에디오피아 내시를 따라가면 그 나라에서도 큰 부흥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주님은 빌립의 경력이 쌓이도록 인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웃의 필요에 따라 움직이니까 자신의 경력에 불이익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주님의 인도에 따라 이웃의 필요에 맞춰서 살아야 하는가? 왜 이런 위험하고도 무모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답은 한 가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을 살도록 도전하신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 노아는 맑은 날 산 위에 올라가서 배를 지었다.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 순진한 사람, 종교에 미친 사람,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노아는 자기가 하는 일이 미친 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작은 증거 하나라도 구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떤 증거도 주지 않으셨다. 이것이 신앙 생활하면서 답답한 부분이다. 우리가 맞다는 것을 보여줄 증거가 없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가? 이 세상은 지나가는 것이고 우리는 나그네인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그네의 삶이 진정한 삶이고 영원한 삶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진정한 삶인가를 두고 이 땅에서 싸워야 하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주님은 오늘도 도전하신다. 무엇이 더 소중하냐? 무엇이 진정한 삶이라고 생각하느냐? 무엇이 영원한 것이냐?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면서 그렇게 살라 하신다. 한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삶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눈떠는 삶이고 그 길이 진정한 삶을 사는 길이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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