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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1:1-3(교만과 겸손)
대림절 둘째 주일이다.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맞이하면서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해야 할까? 본문에는 교만한 모습과 겸손한 모습이 동시에 그려져 있다. 시인은 1절에서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하고 고백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이루려고 힘쓰는 것을 독려한다. 노력만 하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력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고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다고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하나님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고 일을 이루시고 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신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아도 잘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문은 이런 태도를 ‘교만’이라고 한다.
2절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다고 한다. 젖 뗀 아이가 엄마 품에 있는 모습이 겸손한 자의 모습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였다. 우리는 스스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할 자들이 아니다. 주님은 그 짐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쉼을 받으라고 하신다. 신자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산다고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주님이 먹이고 살리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는 존재다. 젖 뗀 아이가 엄마 품속에 있는 모습이 가장 겸손한 신자의 모습이다. 엄마 품속에 안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낮고 작은 자의 모습이다.
사람이 자기를 크게 보이고 싶어 하기때문에 교만해진다. 우리에게는 자기 확장 본능이 있다. 자기를 확장해서 더 크게 보여주고 싶어 하고 더 근사하게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꾸 자기를 부풀리다가 교만해진다. 그런데 시인은 자기의 교만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결심만으로 교만을 치료할 수 없다. 우리의 결심은 언제나 약한 것이다. 시인은 교만을 이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해 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는 일이다.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빼고 작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겸손이 얼마나 어려운지, 자기가 겸손하다고 느끼는 순간 교만해진다. 그래서 아예 자기를 의식하지 않아야 진짜 겸손한 것이다.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말한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특히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게 여겨질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시금석이 있다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나를 하찮은 존재 더러운 존재로 여기는가? 둘째는 내가 나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중에 더 좋은 쪽은 자신에 대해서 잊는 것입니다.“
자기를 잊어야 겸손해진다. 우리는 넋을 놓아버리고 주님의 품에 안겨야 자기를 잊어버릴 수 있다. 그만큼 주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 신자의 겸손한 모습이다.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라고 권고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의지가 되시기 때문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맞이하시는 대림절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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