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산에 올라 갈 때가 있습니다.
산길을 걷다 보면 너른 바위 작은 틈새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흔하지 않은 광경이지만 그렇다고 희귀한 것도 아닙니다.
웬만한 산이라면 한번쯤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강한 곳은 그 생명력 때문에 바위를 둘로 쪼개어 놓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무의 질긴 생명력에 감탄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생명은 살아남고 결국 이겨내는 것이구나
박남준 시인은 '아름다운 관계'라는 시를 썼습니다.
시인은 지리산 깊은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는 분입니다.
시인은 바위 틈새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바위 틈새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인은 나무의 생명력이 질겨서 단단한 바위 틈새를 비집고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바위가 나무의 씨앗을 품고 생명을 키워냈기에 바위틈새에서 나무가 자랐다고 합니다.
시인이 볼 때 바위가 자기 몸을 부수어 빗물을 받아내고 나무를 키워낸 것입니다.
바위는 무생물이고 나무는 생물이기에 생물이 활동했다고 하는 것이 과학적이고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시인의 시선은 바위의 너른 품에 있습니다.
나무가 바위를 이긴 것이 아니라 바위가 나무를 받아들이고 품을 내 준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시선이 따뜻합니다.
시인은 그 바위처럼 내 삶의 힘을 빼고 누군가를 품기 위해서 애쓴 적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뒤돌아본다
산다는 일이 그런 것이라면
삶의 어느 굽이에 나, 풀꽃 한 포기를 위해
몸의 한 편 내어준 적 있었던가 피워본 적 있었던가
-‘아름다운 관계’, 박남중
먹느냐 먹히느냐 자리싸움으로 보지 않고, 자기 힘을 빼고 사랑으로 품는 관계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시인의 마음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희생으로 누구를 품어 보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누구를 품는 것은 언제나 자기를 깨고 희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