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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19.12.31 09:24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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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일이다. 세월이 화살처럼 날아갔다. 돌아보면 감사할 것뿐이지만 부족하고 아쉬운 것 투성이다. 실수해서 부족했고, 능력이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한 바디매오의 짧은 외침의 간구가 오늘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면 좋겠다. 바디매오의 삶의 자리는 절망과 한숨의 자리다. 모든 관계가 단절되는 소외의 자리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바디매오처럼 이웃과 단절된 채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속은 병들어 문드러지는데도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바디매오가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를 외쳤을 때 주변 삶들은 꾸짖어 잠잠하라고 했다. 그냥 조용히 하라는 것이 아니라 꾸짖었다. 사람들은 가까이 있지만 바디매오의 아픈 마음을 잘 모른다. 바디매오는 누가 자기를 불쌍히 여겨줄 수 있는지 알았던 것 같다.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에게 소리 높여 간구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한 이름없는 맹인 거지가 창조주 하나님을 멈추어 세웠다. 가장 비천한 삶을 살던 사람이 창조주를 멈추어서 주목하게 하였다. 그 방법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주님을 주목하게 하는 방법은 언제나 동일하였다.

 

귀신들린 딸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절히 구했던 여인도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면서 예수님에게 나아왔다.(15:22)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도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17:15) 라고 하면서 주님의 관심을 끌었다. 은혜와 긍휼이 많으신 주님은 우리 인생들이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할 때 바쁜 걸음을 멈추고 주목해 주셨다. 그러나 단지 입술로만 외친다고 해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하나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무능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은 내 안에 답이 없을 때 저절로 나오는 탄식이다. 답이 있더라도 내가 풀어낼 능력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고백이다. 무엇이 바른 삶인지 알고 있지만 지나고 나면 이게 아닌데 라고 할 때가 많다. 바로 이거야 라고 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내 안에 그렇게 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그때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는 말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라는 고백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주님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입니다 라고 하는 의미가 불쌍히 여겨 달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다. 그렇게 간구할 때 주님은 발걸음을 멈추고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우리 인생의 모든 해답은 창조주 하나님에게 있다. 우리의 모든 회복의 능력은 주님에게 있다. 우리끼리 아무리 이야기 많이 해도 소용없다.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가서 서야 한다. 주님이 우리 입술을 통해서 가장 듣고 싶은 소리가 무엇일까?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는 간구가 아닐까? 우리 인생에 고비가 있고 아픔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큰 문제도 주님이 멈추어 서면 해결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고백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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