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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훈련(고전9:24-27)
새해를 맞이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결심과 각오를 다진다. 본문 말씀에 따르면 우리 신앙인은 새해를 맞이하는 각오가 남달라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 생활은 달음질이기 때문이다.(24절) 구원받았다는 것은 완성을 의미하지 않고 시작을 의미한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분명한 골인 지점을 향해서 부단히 뛰어가야 한다. 그런데 수십년을 신앙 생활해도 지지부진하여 늘 제자리에 있는 것 같은 사람도 있다. 이유가 있다. 신앙을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이 안 된다는 사람은 에어로빅 비디오를 세 번 보았는데도 살이 빠지지 않더라고 말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신앙을 배우고 삶에서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익히는 것을 훈련이라고 하는데, 훈련이란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는 것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학자들은 학3습7이 좋다고 한다. 세 번 배우고 일곱 번 익힌다. 배우는 것보다 익히는 것에 배의 시간을 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익히는 것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은 익히는 훈련이 절제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절제가 쉽지 않다. 절제는 자기를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잘 달릴 수 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라고 했다. 영적인 삶의 달음질에 뭔가 속도가 나지 않는다면,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면, 쓸데없는 군더더기들을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예수님도 믿음의 경주를 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절제의 훈련을 받았다. 육체의 욕망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사는 훈련을 받았다.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 것을 절제하는 훈련을 받았다. 권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타협하지 않고 절제하는 훈련을 받았다. 주님이 그랬다면 우리도 당연히 훈련해야 한다.
어떻게 절제를 훈련할 수 있을까? 숭고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했다. 썩지 않을 승리자의 관을 얻기 위해서 절제한다고 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상을 받는 그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살면 욕망대로 살기가 쉽다. 멀리 보면 멀리 볼수록 오늘 내가 버릴 수 있는 것을 더 쉽게 버릴 수 있다. 오늘 내가 버려야 저 모습이 내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이 상을 받기 위해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한다고 하였다. 혹시라도 그 상급을 받지 못하고 버림 당할까봐 늘 깨어 산다는 말이다. 자기를 친다는 것은 단호하고 엄격하게 자기를 꾸짖는다는 뜻이다. 멀리 볼수록 나를 더 쉽게 버릴 수 있고, 멀리 볼수록 나를 더 깊이 때릴 수 있다.
절제는 더 좋은 것을 위해서 덜 좋은 것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절제해야 하는 이유는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절제하지 못하면 내일 더 좋은 것을 얻지 못한다. 바울이 생각하는 더 좋은 것은 단순한 자기 성공이 아니다. 바울은 자기 성공을 위해서 절제하지 않았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위한 절제를 강조한다. 절제해서 고상한 인간이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고 사람을 얻는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을 얻을 수 있다면 바울은 언제나 자기를 절제할 수 있다고 하였다. 내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절제하는 삶이 마지막날 주님앞에서 상급을 받는 삶이다. 새해에 배우고 확신하면서 절제를 훈련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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