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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신앙(삼하16:5-14)
늘 칭찬을 듣고 싶은데 현실에서 우리는 칭찬만 듣지는 못한다. 칭찬 듣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칭찬받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참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참 대단하게 보인다. 다윗은 지금 왕위를 빼앗으려는 압살롬의 무서운 추격을 피해 도망가고 있다. 도피의 등짝을 보이며 왕궁이 아니라 들판에서 먼지를 날리며 도망가는 다윗의 모습은 조금만 건들여도 그냥 폭발할 것 같은 심정이다. 비참하고 괴롭고 억울하다. 그런데 시므이는 그런 다윗을 따라오면서 저주를 퍼붓고 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기개를 가진 사람이다. 기개가 있는 사람은 대개 한 성질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다윗은 본능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고 신앙적으로 생각하면서 신앙적인 반응을 하였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통해 자기 모습을 다시 돌아보았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다윗이 죄를 범하게 되었다. 한 여인을 힘으로 짓밟고 그의 남편을 죽게 하였다.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서 한 가정을 망가뜨려 놓았다. 사람들은 대개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한다. 반면에 부정적인 말은 잘 하지 않는다. 관계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폭언이 다윗의 위선을 폭로하고 그의 죄인됨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물론 시므이의 폭언은 악의에 가득찬 왜곡이지만 다윗은 그의 말을 통해서 자기를 성찰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11절)하고 받아들인다. 폭언, 비난, 고난은 자기의 모습을 성찰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다.
군대장관 아비새는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당장 칼로 베고 싶었다. 그런데 다윗은 아비새에게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10절)라고 했다. 다윗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믿고 있다. 정말 하나님이 시므이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므이는 그냥 자기 감정대로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폭언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한다. 골리앗 앞에 섰던 다윗도 그랬다. 모두가 두려움에 빠져 있고 골리앗을 생각했을 때 어린 다윗은 하나님만 생각했다. 자신이 잘 나갈 때도 그랬고 이제 큰 고난에 처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하나님만 생각한다. 좋을 때만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함께 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의 주권을 흔들림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다윗 신앙의 놀라운 점은 12절 말씀에 있다.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그는 이 상황을 하나님이 정말 지켜 보고 계신다고 믿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신다. 그래서 그런 폭언 때문에 하나님이 오히려 더 자주 더 깊이 자기를 쳐다보게 하시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윗은 그 저주 때문에 하나님이 선으로 갚아주실 것을 믿는다. 지금 당장 고통스럽지만, 미래에 소망스러운 일로 바꾸어주실 주님의 능력과 은혜를 기대한다. 이런 고백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고백이다. 하나님이 과거에 내 삶을 주관하셨듯이 결국 나의 미래도 주관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이 아픔도 선한 것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라고 믿기에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처럼 아름다운 신앙으로 무장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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