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있는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이라는 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통과해야 할 수업이 있다면 외로움입니다.
하나님은 외로움을 통해서 우리를 성숙시킵니다.
본래 광야는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홀로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자기 사람들을 준비시키십니다.
깊이 있는 사람은 홀로 있음을 통해서 만들어집니다.
왜 하나님은 성도에게 외로움을 통과하게 하시걸까요?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는 화려한 궁중이 아니었습니다.
외로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홀로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고,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것은 영혼을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신의 성찰을 포기한 사람은 인간됨을 포기한 것입니다.
영성 작가 헨리나웬은 “외로움”과 “홀로 있음”을 구분합니다.
단순한 고독과 홀로 있음을 구분합니다.
“외로움”을 광야로, “홀로 있음”을 동산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광야를 아름다운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동산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홀로 있음”으로 보았습니다.
홀로 있음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닙니다.
홀로 있음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홀로 있음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홀로 있음은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헨리나웬은 “외로움으로부터 홀로 있음으로 가는 움직임이 모든 영적인 삶의 시작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홀로 있음은 하나님의 은혜의 시간이 될 수 있기에 홀로 있음을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백성들과 함께 있게 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홀로 있게 하셨습니다.
홀로 있음이 목표는 아닙니다.
함께 있게 하기 위해 홀로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모세와 같은 광야가 없습니다.
광야는 단순히 장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홀로 있을 수밖에 없는 고난의 현주소가 광야이고 그것은 내적 상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시길 원하십니다.
함께 있기 위해 홀로 있고, 홀로 있기 위해 함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