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사람들에게 “+”가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하고,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길을 가다가 네 다리를 모두 다친 여우를 보았습니다.
야생동물이라 다리를 다치면 사냥을 하지 못해서 금방 굶어 죽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같은 장소에 갔더니 다리 다친 여우가 멀쩡히 살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여우가 어떻게 살아 있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옆에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우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여우에게 먹을 것을 물어주었습니다.
"와 신기하다. 다리 다친 여우도 하나님이 저렇게 먹이시는구나"라고 감탄했습니다.
이 사람은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도 하나님이 먹여 줄 것을 믿고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누워서만 지냈습니다.
결국 가난하게 살다가 영양실조로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왜 내게는 호랑이를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합니다.
"왜 너는 호랑이를 본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우를 본받으려고 하느냐?"
이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자기 좋을대로 해석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미숙하고 어린 사람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입장을 달리해서 볼 줄 아는 눈이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형이 성공해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멋진 자동차를 선물해주었습니다.
새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알고 지내는 동네 어린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저씨, 새 자동차 사셨네요?"
"아니 내가 산 것이 아니고, 형이 선물로 사주었어."
"정말 부러워요."
"너무 부러워하지마. 너도 장차 크면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을 날이 올거야."
그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니예요. 저는 선물받은 것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자동차를 선물해줄 수 있는 형님이 부러운 거예요.
나도 커서 동생에게 좋은 것을 선물해주는 형이 될 거예요."
무엇을 부러워하는가에 따라서 사람의 미래도 달라지는 법입니다.
자기가 편한 대로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교회에서 일 할 때도, 교회의 사역을 평가할 때도,
자기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기보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