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한국 교회는 빛을 좋아한다. 그러나 소금이 되려고 하진 않는다” 교회가 밝게 빛나는 자리에 있는 건 좋아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없어지고 사라지는 자리엔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 말씀에도 소금이 먼저 나오고 빛이 나중에 나오지만 우리는 ‘빛과 소금’에 익숙해져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가 정치 권력화되면 본래 수행해야 할 교회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복음의 위력과 영향력을 갉아먹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교계 지도자들은 세상 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하려면 교회가 세상의 중심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허구이고 착각입니다. 우리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그리 착하지 않습니다. 권력은 속성상 자기 이익을 극대화 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이어서 교회가 선한 사명을 감당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동안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교회가 세속 권력을 가지게 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로가 두 번씩이나 대통령이 되고 그러는 동안 교계 지도자들은 어느 때보다 권력과 가까이 지냈습니다. 어느 시대엔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일부 교계 지도자들은 무슨무슨 기도회라는 명분을 붙여서 청와대와 관공서를 제 교회드나들 듯이 다니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권력과 우호적이고 때로는 사회의 중심세력인 것처럼 보이는 그런 시절을 지나면서도 세상은 더 밝아지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조금도 교회 다워지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사명을 효과적으로 감당하는데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권력과 가까이 지내는 일부 개인이나 집단이 이익을 누렸을 뿐입니다.
그동안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권력의 편애를 받고 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면서 눈총을 받았습니다. 영향력의 증대는커녕 전도는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권력과 부를 맛본 일부 교회와 지도자들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하고, 신자는 신자가 아니라는 능멸을 당해야 했습니다.
본래 교회는 세상의 중심세력이 아니라 변두리 그룹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이라는 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교회는 그 사회 안에서 ‘외인’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교회는 속성상 세상 속에서 외국인이요, 나그네요, 따돌림 받는 이방인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사회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과는 턱없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역절적이게도 교회의 진정한 능력과 영향력은 이렇게 해서 발휘됩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이 보여서 따돌림받는 변두리 그룹의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 삶을 살아내고, 세상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동안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서 누구나 다 보이는 곳에서 세상과 똑같은 가치관으로 세상과 똑같이 말하고 세상과 똑같이 행동하였기 때문에 복음의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제 교회는 사회의 주류 집단으로 남고 싶은 미련을 버려야 하고,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여 이곳저곳에서 벌이고 있는 추태를 탈탈 털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낮은 곳에서 제 역할을 감당할 때 세상은 좀 더 밝고 향기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