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면서 자주 주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일관성’과 ‘공평성’입니다.
공평하지 않다, 일관성이 없다고 하면 큰 잘못을 범한 것처럼 느껴져서 얼어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날 발견한 사실인데,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일관성도 없고 공평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 관원에게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따라와야 영생을 얻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는 죽어가며 인생 막판에 무임승차하는 강도는 그냥 용납하시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다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누군지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고치고자 하셨던 사람만 고쳐주셨을 뿐입니다.
가만히 보시면, 예수님은 제멋대로였습니다.
그래도 일관성이 있다면, 진실로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우하신 것이 아닙니다.
병자들, 가난한 자들, 죄인들에게는 더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특별히 가혹하게 대한 사람도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누구를 돕고자 할 때 “이 사람에게만 해주면 다른 사람은 어떡합니까? 공평하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결국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누군가 큰 소리로, “그래도 기준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라고 외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방식은 그런 기준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기준을 말하려면 그 순간에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었죠.
이런 부분이 목회하면서 제일 힘든 부분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형평성에 어긋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한 일 때문에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 역시 예수님의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염려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욕심과 죄로 인해 공평과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