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본 글이다.
저자는 아버지가 폐암 4기 선고를 받고 입원하시던 해에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주 노릇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다시 상주 노릇을 해야 했다.
그 이듬해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진짜 상주가 되었다.
고시에 떨어지고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을 때 영장이 나왔다.
아무 희망도 찾을 수 없던 시절, 음대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멀리서 악기 연습 소리를 듣게 되었다.
괴성 같은 소리, 삑사리 같은 이상한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여기서 큰 위로를 받았다.
아름다운 음악을 위해 불협화음도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여기게 되니까 인생의 불협화음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음이란 맞아도 좋고 맞지 않아도 재미있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였던 카라얀의 말이다.
오케스트라에서 다른 음과 맞지 않거나 시간을 맞추지 못해 화음이 안 되게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 성급하게 다른 음과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유능한 지휘자가 아니라고 한다.
때로는 그 사람이 연주한 음이 다른 사람이 연주한 음보다 뛰어난 경우도 있어 고쳐야 할 사람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음이 맞지 않아도 거기서 재미있는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도 있다.
모던재즈 음악은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모든 음이 완전히 맞아서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하면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
더이상 발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디에나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코로나19의 불협화음이 온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 지속되고 있지만, 조율의 과정을 거친다면 인류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수나 허물 때문에 생기는 삶의 불협화음도 아름다운 연주를 위해 꼭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