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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야곱입니다(창32:24-32)
야곱은 고향을 떠난 지 20년 만에 귀향한다. 그동안 많은 가족이 생겼고 많은 재산도 모았다. 금의환향이지만 고향에 가까이 올수록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20년 전 형님의 분노가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형님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야곱은 형님에게 선물을 바치자고 생각한다. 선물을 세 떼로 나누어 차례대로 보낸 다음 그 뒤에 가족을 따르게 하고 자신은 맨 뒤에 남게 되었다. 계획대로 되면 괜찮을까? 두려움과 불안을 감출 수 없다. 누구나 이런 인생의 밤을 맞이할 수 있다. 어두운 밤이 되어야 훨씬 더 잘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숨겨놓았던 나의 진짜 모습이다.
그때는 허허하고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간 일이지만 사실은 아팠고 힘들어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감정이 무엇인지 분명해지면서 의식 속에 올라온다. 좀 더 괜찮고 더 크게 보이려고 했던 가식적인 모습들도 어둠 속에서 보게 된다. 물론 어둠 속에 있다고 해서 저절로 다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다. 피하려고 하면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어두운 밤이 참 힘든 시기인데 그때만 볼 수 있는 것을 놓치면 어리석은 인생이 될 수 있다. 계속 가짜 인생, 거짓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야곱이 홀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어둠 속에서 자기를 덮쳤다. 여기서 씨름이라고 하는 것은 점잖은 표현이다. 누가 자기를 죽이려고 덤벼들어서 죽지 않기 위해서 끝까지 발버둥을 친 것뿐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자기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비열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싸우는 과정 속에서 야곱은 자기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야곱의 진짜 속사람과 대면하게 해준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야곱 인생은 이렇게 싸우는 인생이었다. 작은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붙잡고 싸우는 인생을 살았다.
하나님이 허벅지의 관절을 쳐서 부러뜨리자 야곱은 신적인 능력을 느끼고 싸우는 분이 하나님인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야곱은 복을 달라고 매달린다. 그때 그분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야곱은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고백한다. 단순히 통성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20년전 아버지가 에서로 변장한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라고 물었을 때 야곱은 ‘저는 맏아들 에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맏아들이 되고 싶어 평생 맏아들로 변장된 삶을 살았던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얍복강가에서 그는 자신을 속이는 자라고 고백한다.
이제 야곱은 더 이상 ‘에서’가 될 필요가 없다. 야곱이 정직하게 자기 이름을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었다. 야곱은 큰 자로 꾸미고 살아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이지만, 그리고 자기 힘으로 걸을 수도 없지만 하나님이 자기 영혼을 부축하고 걸어갈 수 있을 때 결국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야곱이 밤새 싸움을 하고 절둑거리며 길을 떠날 때 그의 지친 얼굴 위에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인생의 진짜 자유, 진짜 힘은 어디에 있을까? 자기 됨에 있는 것이다. 인생의 밤에 자기 연민에 빠지고 원망하고 분노하면서 모든 원인을 밖에서만 찾으려고 하면서 여전히 자기를 붙들고 있으면 브니엘의 아침을 맞이하지 못한다. 지금 어두운 밤을 맞이하는 사람은 ‘밤이지만 그래도 괜찮아’ 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나의 참되 모습과 대면하여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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