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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20.09.13 07:09

예수님의 행복선언(마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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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행복은 다르다. 복은 객관적인 것이고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복이라도 내가 그것을 복이라고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내게 행복이 되지 못한다. 남들이 뭐래도 내가 복이라고 하면 그것으로 인해 내가 행복할 수도 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복이라고 생각하며 사는가? 신명기 28장에 나오듯이 토지 소산과 짐승의 새끼, 자녀의 복,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의 복을 진정한 복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것과 전혀 다른 복을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앉으셔서 이 말씀을 하셨다. 이 무리들은 당시에 로마 식민지 아래에서 억압받던 백성들이다. 그들은 한마디로 흑암 속에서 헤메이고 의지할 곳이 없고 기대할 곳이 없는 절망 속에 처한 사람들이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귀신들린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치료하시고 귀신도 내쫓으셨다. 이것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려왔다. 온전케 된 사람도 그 이상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이들에게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을 전했는데 그 시작이 팔복이다.

 

팔복을 오해하면, 복받는 여덟 가지 조건을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원문은 팔복이 감탄문으로 되어 있다. ‘복되어라로 시작되는 감탄문이다. 지금은 비록 식민지 백성으로서 아픔을 느끼고 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된 지금이 사실 복을 받은 것이라고 선언하시는 것이다. 팔복은 앞의 네가지 복은 처지나 형편을 말하고, 뒤의 네 가지 복은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의 처지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마음만 가난하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가난한 자들이다. 그래서 오직 주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복된 존재라는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가슴이 찢어지는 통곡을 말한다. 이런 처지에 있더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복이 될 수 있다. 온유한 자는 힘없는 자를 말한다. 이들은 땅을 빼앗기고 내몰리는 사람인데도 예수님 때문에 복된 존재가 된다고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늘 불의함에 시달리며 손해를 보고 억울하게 살았다. 그런 자들도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의 의로 배부르게 된다.

 

뒤에 있는 네가지 복은 지향하는 행동을 말한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 죄짓지 않는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 의를 위해서 희생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다. 팔복의 순서는 하나님이 통치를 받는 사람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순서 같은 것이다. 제일 먼저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그 다음에 애통하고 그 다음 온유해지고 그 다음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 앞에 서면 자기가 죄인이라는 자각 때문에 애통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 더 가까운 관계를 갈망하며 구하게 된다.

 

여러분은 무엇을 복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이 나의 참된 복임을 알고 있는가? 예수님으로 부요함을 누리고 있는가? 주님이 복이 있다고 선언할 때 나도 그것이 복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주님이 복되다고 할 때 주님 제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하고 받아들이면서 그 복됨을 누리는 행복한 존재로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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