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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금과 빛(마5:13-16)
코로나로 인해 기독교 신앙에서 잘못될 수 있는 두 가지 사례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하나는 내세적인 종말적 신앙이고, 또 하나는 현세적인 정치적 신앙이다. 최인훈 작가는 ‘광장’에서 사람은 광장과 밀실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광장에 나가기만 하고 밀실이 없는 삶과 밀실에만 있고 광장이 없는 삶은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골방에서 기도한 뒤에 세상에 나가서 병들고 상한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셨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소금과 빛의 비유를 통해서 신자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다.
소금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소금이니까 세상에서 방부제나 조미료 역할을 하라고 하는 뜻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맥락을 보면 소금의 맛을 잃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고 버려져서 사람의 발에 짓밟히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신자가 신자의 맛을 잃어버리면 버림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또 빛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상 숨겨질 수 없는 것이다. 빛은 공개되어 모두에게 유익을 주어야 한다.
여기서 신자가 세상에 적응하는 방식 두 가지를 생각해 보자.
첫째, 세상에 나가서 아예 티를 내지 않고 섞여서 사는 방식이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는 경우다. 둘째, 맛을 잃는 것이 두려워서 아예 밖에 나가지 않고 숨어 사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등불을 켜서 큰 통으로 덮어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떤 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다.
첫째 경우 예수님은 신자가 맛을 잃으면 안 된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회복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된다. 지금 교회를 보면 세상과 너무 닮아 있다. 소금은 음식 안에 들어가서 맛을 낼 때만 존재의 의미가 있다. 신자는 세상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
둘째 경우 예수님은 신자가 숨어 있으면 안된다고 하신다.
우리끼리 아무리 잘해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정체성을 지키면서 세상에 나가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였다.(요20:21)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 같지만 불가피하기에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빛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혜택을 주는 착한 행실이다.
소금과 빛으로 살라는 것은 신자가 소금과 빛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당시 팔레스타인의 힘없고 약한 이들을 부르셔서 도저히 그렇게 살 형편이 못되지만 그들을 우주적인 사람으로 살라고 도전하고 있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힘없고 불의에 짓밟히며 살았던 이들을 복되다고 하시고 그들을 소금과 빛이 되게 만들어 주셔서 하나님앞에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소금과 빛이라는 것 바탕에 사랑이 있다. 세상에서 소금이 되고 빛으로 사는 유일한 동기와 방법이 사랑이다. 증오와 차별과 혐오같은 것으로서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없다. 사랑으로야만 소금과 빛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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