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더러운 것의 정의를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납득이 가는 말이다. 밥이 식기 안에 있으면 깨끗하다. 있을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밥이라도 방바닥에 있거나 뺨에 붙어 있으면 추한 것이 된다. 이 세상이 넓고 넓지만, 밥이 있을 곳은 식기나 밥통밖에 없다.
똥이 3cm도 안되는 뱃가죽 속에 들어 있지만, 제자리에 들어 있기때문에 더럽지가 않다. 깨끗하니까 얼싸안고 비벼대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같은 똥이라도 항문 밖으로 1cm만 나오면 세상에 그것보다 더 더러운 것은 없다. 제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침이 입속에 고여 있을 때는 소화를 돕는 고운 액체이지만 입 밖으로 조금만 삐져나와도 더러운 것이 된다. 잡초가 들판에 있으면 제자리에 있기에 보기에 괜찮다. 그러나 잡초가 밭이랑 곡식 틈에 있으면 제자리가 아니기에 추하다.
잠잘 때 남편의 위치는 아내의 옆자리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의 옆에 누워 있으면 그것은 더러운 것이 된다. 제 있을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상을 더럽히지 말라”(히13:4)고 하였다. 우상은 우상이 있을 곳에 있어야지 성전에 있으면 더러운 것이 된다. B.C 170년 경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유대교를 멸절시키고 유대에 헬라 종교와 헬라 관습을 도입시키기로 작정했다. 그는 성전 뜰에다 올림피아의 신 제우스의 제단을 세우고 그 제단에 돼지를 잡아 제사를 드리며 제사장들의 방과 성전 내부 작은 방들을 창녀의 방들로 꾸밈으로써 성전을 모독했다.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섰으니 그것은 더러운 일이었다.(마24:15)
사람도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분수없이 엉뚱한 곳을 탐내거나 빼앗으면 모두 더러운 인간이 된다. 목사도 목회를 해야지 정치판에 가서 기웃거리면 더러운 자가 된다. 정치인이 나라 살림살이를 챙겨야지 이권을 챙기기 위해서 기웃거리면 더러운 것이 된다.
가수이자 목사인 하덕규는 ‘풍경’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가사가 이렇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은 제자리에 있는 풍경이다. 남편은 남편다운 자리, 아내는 아내다운 자리, 정치인은 정치인다운 자리에 있을 때가 아름답다. 하나님은 하나님다운 자리, 피조물은 피조물다운 자리에 있을 때가 아름답다. 그런데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더러워진다. 피조물이 하나님노릇하려고 하고, 학생이 선생님노릇하려고 하면 더러워진다. 하나님이 세워 주신 자리에서 자기다워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