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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세상에 진리는 없다고 한다. 각자 나름대로 기준을 정하면 그게 진리이지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자기 생각이 진리의 기준이고, 자기가 속한 집단이 진리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진리가 나의 자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있다고 믿고 하나님 안에서 진리를 붙잡게 된다.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의 진리와 다르다. 세상의 진리는 사실에 근거하고 기초하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의 빛으로 비출 때 드러나는 것이다.

 

진리와 사실은 구분되어야 한다. 태양 빛 아래에서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라면, 예수의 빛 아래에 드러나는 것이 ‘진리’이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 세상에 오셨다.(마4:16) 그 빛은 생명의 빛일뿐만 아니라 진리의 빛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루 일상에서 태양 빛 아래에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태양 빛 아래에서는 진짜 보아야 할 진리를 보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주관적 확신을 따라 산다. 정치에서도 주관이 강한 사람이 있는데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자기가 선 자리가 정중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를 중심으로 오른쪽은 우파이고 왼쪽은 좌파라고 여긴다. 신앙에서도 자기 확신이 강하신 분은 자기가 이해한 성경 몇 구절을 가지고 마치 성경 전부를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 자기 신앙의 경험이 모든 이에게 적용되어야 할 보편적인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개인의 체험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진리인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수직축에 자기를 맞추기 위해서 자기 확신이라는 껍질을 끊임없이 깨뜨려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안에는 굽어진 것이 있다. 죄인이기에 우리 눈에는 ‘들보’라는 것이 항상 있다. 들보 때문에 남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남의 눈에 자주 보이는 티끌도 결국 자기 들보가 상대방 눈에 비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진리의 빛으로도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회색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일방적으로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논리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은 어느 한쪽을 취하는 문제가 아니다.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옳지만, 감성적으로 그 사람의 잘못을 감싸 안아 줄수도 있어야 한다. 열심과 지식도 어느 한쪽을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양쪽 다 어느 정도 필요하다. 지식을 가진 열심히 되도록 노력할 때 진리를 붙잡고 살 수 있다.

 

진리는 어디 있는가? 예수님 안에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예수님은 내가 곧 진리라고도 하셨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실 때 사실을 분간하고 따지는 것을 너머서 참 진리 안에 머물 수 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게 사셨다. 진리가 있는 곳에는 은혜도 있다. 성탄절은 어둠 속에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이라는 참 빛을 주신 날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진리 안에 거할 수 있다. 진리라는 것이 무색해진 이 시대에 예수님 안에서 참 진리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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