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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랑(계2:1-7)
바울이 개척하여 3년을 목회하였고, 그 후에 바울의 제자 디모데가 목회하였고, 나중에는 사도 요한이 목회한 교회가 있다면 얼마나 대단한 교회일까요? 그 교회가 에베소교회입니다. 에베소라는 곳이 로마제국의 거대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런 대도시에서 에베소교회는 신앙의 순결함을 지켰습니다. 주님은 이런 에베소교회를 칭찬해주었습니다. 2절에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행위와 수고는 믿음으로 행하는 실천적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황제 숭배라는 종교행사를 강요했고 이것을 거부하면 불이익을 주고 박해했습니다. 그런데도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며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실천적 삶을 살았습니다. 박해에도 잘 참고 견뎌냈습니다.
주님은 또한 그들이 악한 자를 용납하지 않고 자칭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을 시험하여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도 알고 계십니다. 잘못된 교리가 전파되면 교회 분쟁의 불씨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잘못된 교리가 싹이 트지 않도록 아예 배척했고 교회 내에 교리적 순결을 지켜냈습니다. 이런 점에서 에베소교회는 훌륭한 교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무섭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다시 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십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1:20)고한 것을 보면,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교회 호적을 파내겠다는 뜻과도 같습니다. 실로 엄중한 말씀입니다. 좋은 점이 다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처음 사랑이 없다고 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요? 처음 사랑이 그만큼 중요한 것일까요?
주님은 처음 사랑이 없는 것은 교회라는 촛대의 불이 꺼진 것과 같다고 생각하십니다. 사랑은 교회의 생명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우리 몸에 신경계가 있는데 신경계가 작동되지 않으면 우리 몸은 죽은 것과 같습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기도 하고, 한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작은 교회에서 목회할 때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한 사람만 새로 와도 교회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웅성거리고 활기차고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에베소교회도 처음 시작할 때 같은 모습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새로 출석한 한 사람을 극진히 섬기고 사랑하면서 마침내 그가 주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을 때 교회는 마치 천하를 얻은 듯이 기뻐하고 행복해하지 않았을까요? ‘당신 한 사람을 위해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섬겨드리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랑이 없습니다.
주님은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혹시 황제 숭배라는 불의한 시대와 싸우느라 독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일까요? 교리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새신자를 의심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대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서로 의심하고 분별하는 과정속에서 처음 사랑이 식고 냉랭하게 된 것일지 모릅니다. 주님은 여기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도전하십니다. 교회가 촛대라면 촛대의 사명은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혼 사랑이라는 선교적 불꽃이 꺼지면 촛대가 그 자리에 놓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처음 사랑의 마음으로 선교적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면 교회는 불이 꺼진 것이고, 불이 꺼진 교회는 존재 의미를 상실한 촛대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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