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연수 오셨던 한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저를 보면서 목사로서 어눌하기가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기도를 할 때나 설교를 할 때나 그 분 표현에 따르면 목사가 저런 단어를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제되지 않은, 한마디로 세련되지 못한 언어를 구사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설교에도 성도님들이 은혜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다는 얘기였습니다. 사실 칭찬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구분이 안 가는 평가를 받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일부러 그러는 경향도 조금은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교회에서 사용하는 의미 없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우리 교회에서나 다른 교회를 가서 집회를 인도할 때나 단상에 올라가서 ‘할렐루야’ 라고 인사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가 더 편할 뿐 아니라 ‘할렐루야’ 라는 말이 본 뜻과 다르게 교회 용어화 되는 것이 싫어서 입니다. 또 다른 예는 많은 목사님들이 성경을 낭독할 때 ‘몇 절에서부터 몇 절까지 읽겠습니다’ 안 그러고 ‘몇 절로 몇 절까지…’라고들 합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에서만 특히 목사님들이 독특하게 사용하는 고정화된 교회 용어를 일부러 피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예수님을 안 믿던 시절에 느꼈던 교회의 첫 인상 때문입니다. 당시 막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아내가 강권을 해서 한번 따라 나간 교회를 계속 다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나중에 뒤돌아 생각해 보니 당시 저의 담임 목사님의 기도할 때의 말투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제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목사님들의 기도, 굵으면서도, 점잖고 거룩한 그런 톤과 말투를 생각했는데, 그 와는 반대로 보통 평상시와 다름없는 다정다감한 말투였습니다. 그 기도 소리에 호감을 느꼈고 그래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도 당시 직업 군인이셨다가 40이 넘어서 목회를 시작하셔서 그런지 목회자로서 훈련된 듯한 톤이나 말투가 아니었는데 그것이 저에게는 더 친근하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휴스턴 서울교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예배를 인도하던 최영기 목사님이 설교를 시작하실 때까지도 저는 속으로 ‘저 분이 목사님일까? 아닌 것 같은데… 저 분은 사회를 보는 분이고 누군가 다른 분이 설교하시겠지’ 하며 궁금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에 ‘아! 저 분이 목사님이셨구나’ 하던 그 최 목사님께 느끼는 호감도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목사 같지 않은 태도, 말투, 목소리 그것이 저에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에게 가끔 어릴 때부터 오래 훈련해 온 목사님들처럼 좀 더 말투나 단어의 선택에 주의를 기울이고 훈련하라는 조언을 하는 분들이 한두 분 있었지만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겉모습보다는 속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첫 번째 이유이고, 또 하나는 보는 즉시 ‘아! 이 분 목사님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그런 사람보다는 평신도같은 목사로 성도님들 사이에서 섞여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