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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놀라게 한 사람(눅7:2-10)
복음서에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라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라고,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놀랍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님이 사람을 보고 놀라는 기록도 나옵니다. 모두 두 번 나오는데 한번은 고향 나사렛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또 한번은 본문에서 이방인 백부장이 보여준 믿음 때문에 놀랍니다. 한번은 믿음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믿음이 없어서 놀라고, 또 한번은 그만한 믿음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담대한 믿음을 보고 놀랍니다. 우리도 주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백부장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놀랐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에게 치료를 부탁한 사람이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라 자기 집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례적인 것은 당시 종은 인격체라기 보다는 소모품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이 종을 사랑했습니다. 2절에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는’(엔티모스)이라는 형용사는 ‘존귀히 여기다’(티마오)는 동사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존귀히 여긴다(티마오)는 아랫 사람이 윗 사람을 우러러볼 때 갖는 태도를 뜻합니다.
하찮은 종을 살리기 위해서 지금 유대교 장로들, 백부장 친구들인 고위관리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장로들은 그를 도와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예수님에게 말합니다. 백부장이 유대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도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정복자 고급 관리가 피정복지 백성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그의 사람 됨됨이가 어떠했는지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그가 보여준 사랑은 단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시혜를 베푼 차원이 아닙니다. 여기서 사랑은 ‘공감’을 뜻합니다. 억압받는 유대민족이 회당에서 말씀을 들을 때 위로를 받고 소망을 갖는 것을 보고 그들을 공감하며 섬기려고 한 것입니다.이런 태도가 주님을 놀라게 한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과 함께 동반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종을 치료하기 위해서 백부장 집으로 가는 중에 백부장은 친구들을 보내서 예수님이 자기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전달합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다만 말씀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말씀대로 종이 치료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이 군대에서 명령하면 부하들이 그대로 수행하는데 주님도 그렇게 하시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마치 옛날 군주시대에 왕이 신하의 집에 방문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누추한 곳에 왕을 모실 수 없습니다. 왕이 말씀하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그런데 그 명령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우주의 왕, 창조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이 있으라 하실 때 빛이 생겼던 그 창조주의 말씀앞에 선 피조물로서 자기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위장된 겸손이 아닙니다. 태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주님 앞에서 완전한 무가 되어서 말씀을 기다리는 피조물의 모습입니다. 어쩌면 가장 단순한 모습일지 모릅니다. 창조주의 말씀 앞에선 백지로 말씀대로 새롭게 그려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을 주님은 놀라워 하십니다. 백부장은 사랑의 깊이와 믿음의 깊이를 함께 갖춘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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