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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영광(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능력이라는 말이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우리가 능력을 숭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능력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능력을 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요? 본문은 하나님의 능력이 십자가의 도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약함의 원리를 말합니다. 약함을 통해서 오는 능력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 2장은 십자가의 도가 세 가지 방면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여줍니다. 첫째, 고전1:19-25에서 복음 안에 약함이 나타납니다. 둘째, 고전1:26-31에서 복음을 받는 사람들에게 약함이 나타납니다. 셋째, 고전2:1-5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약함이 나타납니다. 약함은 3중적으로 나타나는데 이 약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다는 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언제나 십자가를 통해서 오는 것입니다.
본문을 기록할 당시 사람들은 능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능력이 로마제국이 추구했던 힘의 원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대한 신전을 지어놓고, 우리가 믿는 신을 믿으면 너희도 이렇게 잘 될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계속 전했습니다. 세상의 지혜는 어떻게 하면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약함은 미련한 것이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데도 고난이 있고 병에 걸리고, 아파서 쓰러지는 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십자가에 아무런 능력이 없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런데 중세 시대는 세상의 힘의 논리가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루터는 이것을 ‘(인간)영광의 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교회는 영광의 신학을 추구하면서 ‘크고’ ‘강하고’ ‘많은 것’을 힘이 있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배당도 세상을 압도하는 엄청난 규모의 크기로 지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큰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추구했던 힘의 논리하고 다르지 않습니다. 루터는 영광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이제 우리는 십자가 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루터는 십자가의 약함을 통해서 영광이 오는 것이지 강함을 통해서 능력과 영광이 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로 한번 구원 받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자가 계속해서 걸어가야 할 원리이고 살아내야 할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우리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십자가의 도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십자가로 구원받은 다음에 세상의 지혜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그 생각이 틀렸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십자가의 도를 가지고 살아갈 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얻게 되고 경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구약에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것은 다른 민족보다 수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잘것없고 떠돌아다니는 그런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원리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강함을 쫓고 힘을 구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약함을 통해서 드러나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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