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통금시간이 있을 때 ‘유령 아버지’라는 말이 있었다.
유령처럼 통금이 다 되어야 나타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잘 볼 수 없는 아버지를 가르킨다.
‘인질 아버지’라는 말도 있다.
직장이 아버지를 인질로 잡아두고 집에 보내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도망자 아버지’도 있다.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돌보지 않으려는 심사로 일부러 도망가버리는 아버지를 말한다.
어머니 편으로 오면, ‘골프 과부’가 있고, ‘낚시 과부’, 등산 과부‘라는 말이 있다.
휴일이 되면 남편이 골프다 낚시다 등산이다 해서 아내는 과부 신세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에는 ’신앙 과부‘라는 말도 있다.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부인을 말한다.
총각들은 결혼 전에는 ’장가 예수‘를 믿는다.
애인을 얻기 위해서 환심을 사려고 ’장가 예수‘를 믿는다.
그것이 다행히 ’신혼 예수‘까지는 연장되기도 하지만 대개 그다음부터는 언제 약속했느냐는 듯이 주일만다 딴 곳으로 도망 가버린다.
왜 한국에는 신앙 과부가 많을까?
교회마다 여신도 숫자가 남신도 숫자보다 많다.
대개 신학적 답변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종교적이다‘라고 해서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이유는 없을까?
남자들이 교회에 잘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휴일 교회 나오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일주일 직장에서 시달리다가 교회에 와서도 여러 가지 책임을 맡게 되면 주일이 안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중노동이 될 수 있다.
주일 봉사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평일보다 더 피곤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교회가 오락성에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오락이라면 속된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원래 주일은 신앙의 축제가 있는 날이다.
교회 오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야 한다.
어떻게 교회 오는 것을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주일 오후에 함께 모여서 취미 활동을 할 수 있어도 좋겠다.
코로나 이후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지금부터라도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남성들이 교회에 나오게 하려면 무엇보다 여신도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남성이라면 그 남성을 지배하는 것이 여성이라는 말도 있다.
남편이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 마음을 녹여놓아야 한다.
아내의 행실과 남편의 구원은 관련이 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