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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성경공부
2021.05.16 12:57

주와 선생이 되어 행하신 일(요1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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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긴 이 장면은 모든 신자의 가슴에 새겨진 그림이다.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긴 후에 말씀하였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주와 선생으로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 두 가지때문이라고 하셨다. 하나는 예수님으로부터 씻음을 받지 않으면 예수님과 상관없게 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본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하셨다. 즉 발을 씻는 것은 제자들과 상관하기 위함이고 그다음 그래서 그들도 누군가의 발을 씻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발을 씻지 않으면 왜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가? 발을 씻는 것이 죄와 허물에서 씻음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으로서 예수님의 발 씻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제자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선생의 모습이다. 유교에서는 이상적 선생의 모습이 군자다. 인을 실천하는 선생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 주는 분이 이상적 선생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용서하는 선생의 모습을 말한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용서가 필요한 약한 존재들이다. 스승으로서 부모도 먼저 자식의 허물과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잘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허물을 씻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은 범죄 할 때만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목표에 달성하지 못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마치 잘못한 사람처럼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 제자, 기대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 자식에 대해서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기꺼이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스승으로서의 모습이어야 함을 주님이 보여주신다. 발은 세상과 접촉하는 부위다. 그래서 세상의 오물과 더러움이 모두 발에 전가될 수 있다. 걸어온 길의 흔적이 발에 남아 있다. 그래서 비판하고 정죄하게 되면 발을 내놓을 수도 없다. 부끄러워 자꾸 숨기게 된다. 기꺼이 더러운 발에 손을 대고 씻어줄 때 그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그렇게 낳은 사랑은 다시 사랑을 낳는 연결고리가 된다. 발씻음을 받은 자가 또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는 것이다.

 

더러운 발을 씻는다는 것은 그가 발을 내밀 때까지 기다려주고, 버텨내는 것도 포함된다. 사실 나도 아프고 힘들고 상처가 있는데 제자를 위해서 희생하고 포기하고 참을 수 있을까?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씻음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사랑이 사랑을 낳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하려면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다. 그 사람을 내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 내 마음대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잘 기다릴 수 없다. 그 사람 발이 왜 더러워졌는지 우리는 모른다. 웅덩이에 빠졌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웅덩이에서 꺼내다가 자기 발이 더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선생이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려주고 오래 지켜보고 씻어 주는 일이다. 내가 기대한 사람이 더러워지면 화가 날 수도 있고 미워질 수도 있다. 그래도 참고 씻어야 한다. 그것이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도 행해야 한다. 알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17절) 행하게 하려고 본을 보였다고 하셨다.(15절) 우리는 좋은 것을 알지만 행하지 않는다.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본을 보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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