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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개(눅3:3-14)
창립 53주년을 맞이하면서 저는 목사로서 제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개인적으로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목사로서 할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 목사 장로로서 권사 집사로서 혹은 성도로서 나의 직분과 위치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잘 감당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시점입니다.
세례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했습니다. 그때 많은 유대인이 세례받기 위해서 요한에게 몰려왔습니다. 본래 세례는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을 때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것도 아닌데 유대 인구 거의 전부가 6개월 만에 요한에게로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임재하시고 은혜를 부어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와같은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고 주님의 은혜가 부어져서 영적 갈급함을 가지고 사람들이 모이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세례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요한은 기뻐하면서 환영을 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원색적인 욕을 하며 그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아브라함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회개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임박한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자고 하는 마음으로 형식적인 세례를 받으러 왔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부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은 돌의 가치와 비슷하다고 조롱합니다. 원하신다면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속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나온 지 10년 20년의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래된 신앙 전통이 회개의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직분이나 신앙적 전통은 바깥에 굴러다니는 돌의 가치 정도 만큼 되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느끼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입으로 자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교회 나오는 것을 심리적 정화작용(카타르시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렇게 많은 예배와 기도가 있는데도 왜 변화가 되지 않습니까? 신앙이 그저 카타르시스 정도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북치고 장구치고 소리지르면 마음은 편해지지만 밖에 나가면 이전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독사의 자식으로 굳어지는 길입니다.
세례요한이 질타하자,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요한은 옷이나 음식을 더 가진 자는 나누라고 합니다. 세리들에게는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합니다.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군인들에게는 힘으로 강탈하지 말고 받는 봉급으로 족한줄 알라고 합니다. 회개의 열매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금식하고 눈물흘리는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지만 회개의 열매는 각자 삶의 자리에서 맺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요청하는 회개의 열매는 분명합니다. 본래 너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세리는 세리, 군인은 군인, 목사는 목사, 장로는 장로, 권사는 권사, 집사는 집사, 교회는 교회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자리에서 하는 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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