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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겔37:1-14)
질문과 대답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할까? 학생들은 대답이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일반적인 입장에서는 질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베스트셀러는 ‘대답’을 하지만, 명작은 ‘질문’을 한다”는 말이 있다. 좋은 질문이 있기에 좋은 대답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질문하시고 우리의 답을 듣는 관계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시고 대답할 수 있는 존재로 우리를 대하신다. 죄를 범하고 숨어 있는 아담을 향해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하고 물었고,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는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위치를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를 자각시키고자 하는 질문이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질문하신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은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였다. 뼈들은 심히 많았고 모두 말랐다.(2절) 더구나 뼈가 매장되지 않고 그냥 버려진 것은 대단히 불명예스럽고 모욕적인 죽음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저주받은 죽음의 증거였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뼈들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고, ‘이 뼈들이 다시 살 수 있겠느냐, 네 생각은 어떠냐?’ 하고 물으신다. 단지 살아날 가능성에 대해서 질문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 상황이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시키고 있다. 즉 하나님과 연관이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마른 뼈는 하나님 백성들의 현재 상태이다. 11절에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고 했다. 뼈는 한 사람의 정체성이고 본질이다. 장례를 치르고 나면 뼈만 남는다. 다른 것은 다 바뀌어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뼈다. 그런데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마지막 한 줌에서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에스겔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변 환경을 조사하고, DNA 검사를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물으신 것은 지금 이 문제를 하나님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영적인 안목과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에스겔은 대답했다. “주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3절)
파멸을 경험한 사람이 굉장히 겸손하게 보이지만 거기에도 교만이 깃들 수 있다. 자기 삶의 결론을 자기가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끝장났어. 그 문제를 나와 그 문제 관계성 속에서만 바라보고 씨름하다가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가진 가능성, 내가 가진 자원과 경험 속에서 스스로 인생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에스겔의 대답 “주께서 아시나이다”라는 것은 그런 뜻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다. 내가 결론을 내린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상황의 변화를 열어 놓았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문제라는 것이다.
우리도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 끝이구나 하는 지점이 있다.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는 우리의 영적 현실일지 모른다. 여기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태도를 정리했을지 모른다. ‘주님이 안 도와주셔도 제가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넘어가겠습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나에게 찾아오셔서 질문하신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그때 우리의 대답은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해야 한다. 과연 주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뼈들이 일어났고 생기에게 대언할 때 이 뼈들이 큰 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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