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피부에 종양이 생겼는데, 혹시 암인가 싶어 의사를 보았습니다. 아내가 일하는 클리닉에 가니까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의사가 친절하게 검진을 하고, 조직 검사를 하자고 했습니다. (나중에 악성이 아니라 양성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어떤 할아버지 의사에게 검진을 받았다고 했더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그 의사가 아마 당신보다 나이가 아랠 거예요.”
얼마 전 우리 교회를 처음 방문하신 할머니와 새교우 실에서 식사를 나누었습니다. 연장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자매라고 부르지 않고 모매님이라고 불러드렸습니다. (모매[母妹]는 어머니 같은 자매라는 의미)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할머니도 연배가 나보다 아래였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그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은 거울에 비춰지는 실제의 모습이 아니라 수십 년 전 자신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그려져 있는 자신보다 나이가 먹어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나보다 늙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착각에 빠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마음이 30대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로맨스 영화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여배우들이 아직도 예쁘게 보입니다. 감동적인 얘기를 들으면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내와 가끔 부부싸움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60세 중반 노인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얼마 산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갔나 싶어서 허무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으면 내가 얼마나 절망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그러나 늙는 것이 서글픔의 대상만은 아닙니다. 좋은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응 속도가 느려지니까, 위기 상황하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당해도 쉽게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역경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다 장성해서 부양의 의무가 없어지니까, 위험 부담이 있는 과감한 결정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듣고, 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시선이 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망이 줄어드니까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향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자랑스러워하실 수 있도록 삶을 끝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에 집중하게 됩니다. 죽음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영원한 삶을 향해 가는 관문 정도로, 살포시 기다려지는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